지난 1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논문이 큰 이슈가 됐다. 이원철 교수의 공동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결정핵 생성 과정을 원자 수준에서 관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본 연구 결과는 이원철 교수가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인 ‘호기심’에 ‘성실함’이 더해진 결과였다.

■정체불명의 나노무늬를 만나다

벌써 9년도 더 된 일이다. 2012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원 시절 이원철 교수는 우연히 방문했던 후배 연구원의 실험실에서 그래핀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늬가 생성된 것을 발견했다. 당시는 무심히 넘겼으나 그 후로 1년 뒤 도쿄대학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이원철 교수는 그 정체불명의 무늬와 또다시 조우하게 됐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발견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죠. 그 무늬가 무엇인지 밝혀야겠다는 생각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무늬를 발견했을 때 함께 자리했던 후배 연구원이 현재 공동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의 박정원 교수다. 이원철 교수는 박정원 교수와 함께 무늬의 정체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그 무늬는 금 원자를 방출하는 나노물질(나노리본)이었고, 해당 연구 결과는 2015년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를 통해 발표됐다.
하지만 무늬의 정체를 밝히자 이번에는 또 다른 의문점이 고개를 들었다. 전자현미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전자빔을 비추니 나노리본이 분해돼 금 나노결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렇다면 결정은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연구는 결정이 형성되는 과정을 밝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정 형성 과정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 성능의 전자현미경이 필요했고,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팀을 합류시켰다. 그렇게 연구는 어느새 국내외 10여 개 연구팀이 참여하는 대규모 공동연구로 발전했다.
공동연구팀을 이끈 이원철 교수와 전성호 박사는 원자 한 개 두께의 얇은 그래핀 위에 전자빔을 받으면 금 원자를 내보내는 나노물질을 합성한 뒤, 전자현미경으로 금 원자가 나노결정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그런데 촬영 결과 나노결정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중간에 촬영이 안 된 줄 알고 전자현미경의 성능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다 ‘실제 결정에서 다시 비결정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역발상을 하게 되어 연구 방향을 전환하게 됐죠.”

■핵 생성의 순간, 200년 된 수수께끼 해결

결정의 형성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이는 이미 1800년대부터 제기됐던 의문이다. 대부분의 고체는 원자가 규칙적으로 모인 결정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려면 원자들이 모여 결정핵을 생성해야 하는데 100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의 미시 영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제껏 관찰에 성공한 연구자는 없었다. 그렇기에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원자가 잘 정렬된 결정 구조가 핵을 형성하며 커지는 것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비결정 구조에서 결정 구조로 변하면서 물질을 형성한다는 새로운 이론이 제기돼 고전적 이론과 논쟁을 벌였다.
이원철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세계 최초로 결정의 핵이 생성되는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관찰 결과 핵은 어느 정도 크기를 이룰 때까지 원자가 무질서에서 결정 구조를 이루다가 다시 무질서로 돌아가고 정렬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무질서에서 질서로 역행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열역학 이론도 제시했다. 오랫동안 수수께끼의 영역이었던 고체 물질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밝힌 본 연구 결과는 지난 1월 29일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사이언스』에 실렸다. 이를 통해 이원철 교수는 ERICA 구성원 중 처음으로 주저자로서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하는 영광도 안았다.
“처음 의문을 품고 연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러한 성과를 이룰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ERICA 일원으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주도해서 기쁘고, 앞으로 연구 자원들이 고루 나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단번에 난제를 푼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많은 연구자가 축적해온 연구의 길에 저희도 한 단계를 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자에게는 호기심과 성실성이 중요

지금이야 기쁜 마음으로 감회를 전하지만 ‘유레카’를 외칠 정도로 극적인 순간은 없었다고 밝히는 이원철 교수. 세계 최초라는 수식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천천히 여기까지 왔을 뿐입니다. 또한 저희가 단번에 난제를 푼 것이 아니라 그동안 많은 연구자가 축적해온 연구의 길에 저희도 한 단계를 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원철 교수는 연구자로서의 성실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호기심, 즉 ‘궁금하게 여기는 능력’은 연구자로서 타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연히 발견한 그래핀 위의 정체불명의 무늬에 궁금증을 가졌던 것처럼 말이다.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된 본 연구는 향후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웨이퍼 위에 결정을 성장시키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데, 반도체 증착 공정의 원리를 밝히는 데 기여해 더욱 효과적으로 소자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금 외에 다른 물질이 형성되는 과정도 연구하고, 결정핵 생성 순간을 보다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전자현미경 동영상의 프레임 속도도 향상시키고 싶습니다.”
거창한 기치를 내세우기보다 작은 의문들을 풀며 견실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가겠다는 이원철 교수. 그의 연구 여정에서 또 어떤 발견이 이어질지 궁금하다.

이번 공동연구를 함께한 이원철 교수(오른쪽)와 전성호 박사(중앙), 박정원 교수(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왼쪽).
이원철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는 학생들에게도 연구자로서의 호기심과 성실성을 강조한다.

이원철 교수의 ‘나노바이오기계시스템연구실’은?

나노 영역 융합 연구 진행, 다양한 전공자 환영
이원철 교수가 이끄는 나노바이오기계시스템연구실은 반도체 공정을 기반으로 마이크로미터(μm), 나노미터(nm) 등 기계공학에서 다룰 수 있는 가장 작은 영역의 기계 시스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화학, 물리학, 생물학, 재료공학, 전자공학 등 기계과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분야가 융합된 연구를 진행한다. 그 때문에 다양한 학부 출신자들의 진학을 환영한다. 강압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소통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연구실을 지향하고 있다. 이원철 교수는 “평소 호기심이 많고 연구나 공부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대학원 진학이 향후 진로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힐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