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라는 말처럼 오해되는 말이 있을까. 소통은 단순히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설득하는 행위가 아니라, 서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다. 그렇기에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김정기 교수는 소통은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인류의 지혜라고 말한다. 어떻게 하면 소통의 지혜를 복원할 수 있을지 김 교수와 소통에 대한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 소통으로써 존재하는 인간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 그리고 ‘호모 디지쿠스(디지털 인간)’에 이르기까지.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Carl von Linne)가 호모 사피엔스란 학명을 고안한 이래 인간에게는 수많은 이름표가 붙여졌다. 이들 학명과 조어가 인간의 특성을 정의하는 것이라면 여기에 소통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커뮤니쿠스’가 빠져선 안 될 것이다.
“호모 커뮤니쿠스는 어휘적 조합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리빙 위드 커뮤니케이션(living with communication)’이라 할 정도로 인간은 소통 없이 살 수 없죠. 소통은 우리 인류사에서 정치, 경제 못지않게 개인의 삶, 공동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소입니다.”
지난 9월 <소통하는 인간, 호모 커뮤니쿠스>라는 책을 펴낸 김정기 교수의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소통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부상했다. 김 교수에게도 소통은 지난 10년간 머릿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은 주요 관심사였다. 그래서 5년 전부터 중앙일보에 ‘소통카페’라는 고정칼럼으로 글을 쓰고 있다. 김 교수가 소통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통의 반대말이라 할 수 있는 불통, 그에 따른 사회적 통증이 큰 것 같습니다. 단지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진전과 발전을 방해하는 장애가 되죠. 사회적 차원의 불통은 정파적 이해나 집단적 이해관계에 의한 것이라 당장 해소하기 어렵겠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계속 논쟁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또한 개인적 차원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입니다. 소통은 화합과 협력을 도모하는 길이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0여 년간 미디어 수용자와 이용자 연구에 매진해왔던 김 교수의 연구 주제가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게 된 것은 그동안 이어져 온 인간에 대한 탐구가 소통이라는 주제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자 그 성과를 학술논문 형식이 아닌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됐다.

■ 소통의 출발은 ‘경청’

김정기 교수는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자 연구 성과를 학술논문이 아닌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유하는 만큼 이해하고 존재하는 동물이다.’ <소통하는 인간, 호모 커뮤니쿠스>의 겉표지에 쓰인 구절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관계 맺기의 출발점은 경청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청에 그리 정성을 쏟지 않는다. 타인과의 소통이 본능이건만 경청에는 서툴다니, 호모 커뮤니쿠스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경청보다 자기표현에 익숙합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발현하려는 욕구가 듣기보다 말하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죠. 또한 자신의 의도를 성취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여기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한 경쟁 사회를 살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에 경청에 필요한 인내심을 잃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청은 우리에게 귀가 있다고 절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경청 커뮤니케이션을 다룬 김 교수의 저서 3장에 의하면 경청은 듣기(hearing), 주목하기(attention),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understanding)와 같은 적잖은 노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김 교수는 일선 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기를 제언한다.
“기존에도 경청에 대한 인식과 가르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피치나 프레젠테이션에서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으로 교육된 면이 있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의 표현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포괄적인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필요하죠. 오래전부터 수업시간을 통해 학생들의 사례를 수집해 왔는데, 많은 학생이 학창 시절에 선생님이나 부모님, 주위 분들로부터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느냐’ 등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경험을 했더군요.”
이렇게 좋지 않은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자신감 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못할 뿐 아니라, 타인의 말에도 귀를 닫고 자신도 모르게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는 것. 원활한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결핍이 아니라 그동안의 커뮤니케이션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올바른 커뮤니케이션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것이다.

■ 소통과 협력의 인간관을 회복해야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공유하는 만큼 이해하고 존재하는 동물’이라고 설명하는 김정기 교수. 그는 진정한 공감과 협력의 소통을 지향한다.
총 16장으로 구성된 저서는 경청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해 사과 커뮤니케이션, 논쟁 커뮤니케이션, 소셜 커뮤니케이션 등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표적인 소통 행위들의 의미와 가치를 밝히고 있지만, 세간의 자기계발서처럼 소통의 공식이나 처방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소통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나름의 소통 방식을 개발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 길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김정기 교수의 방법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는 상대도 생각, 욕구, 의도, 목표,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인정하려고 노력합니다. 상대도 나와 똑같이 자기중심적이고, 희로애락하는 존재로 대접하는 것이죠. 그러면 갈등이나 다툼도 상당 부분 해소되고 상대를 배려하는 소통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노력의 대상이 수업시간 학생들이라고 예외이진 않을 터.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시는 모습 멋져요’, ‘저희와 즐겁게 커뮤니케이션하며 강의하셔서 좋아요’, ‘저희랑 계속해서 이야기하려고 시도해주셔서 감사해요’,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참된 호모 커뮤니쿠스가 되겠습니다’ 등 스승의 날에 학생들에게 받은 감사 카드와 앨범을 보니 학생들과 공유된 이해의 정도가 얼마나 큰지 생생히 전해진다. 이런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선사하는 희열이다.
김 교수의 소통에 대한 연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몇 권의 책이 구상을 마쳤다. 지금까지는 상대(개인, 집단, 국가)에게 인지적 부조화, 심리적 불편함, 위기감, 위협감을 조성한 뒤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의 목적 성취, 이해 위주의 설득과 소통 패러다임 연구가 주류였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동감, 공감, 감동, 눈물의 심정, 마음으로 설득하고 소통하려는 협력과 이해의 문화를 향해 있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진심 어린 눈물 한 방울, 따뜻한 말 한마디에 서로를 한순간에 이해하게 되는 공감의 문화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의 긍정적 속성을 발굴해 커뮤니케이션에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김정기 교수의 연구 결과는 단행본 형태로 출간돼 비전공자인 일반인들과 소통을 할 것이다. 우리 고유의 소통과 협력의 DNA를 복원하는 작업에 많은 이가 동참할 수 있도록 말이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