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대를 살았던 독일의 자연과학자이자 지리학자, 박물학자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학문의 벽을 허문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훔볼트재단(Alexander von Humboldt Foundation)은 그의 세계주의적 정신을 기려 세워진 학술단체로, 세계의 뛰어난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학술적 교류를 독려한다. 지난 7월 독일로 떠난 최누리 학생 역시 그 수혜자다.

이번 초청 연구프로그램의 주최인 훔볼트재단(Alexander von Humboldt Foundation)을 방문한 모습[왼쪽부터 쉴트(Schildt) 박사, 헤세(Hesse) 사무부총장, 최누리 학생, 아우프데어하이데(Aufderheide) 사무총장, 이재성 교수, 최광준 교수(경희대학교)].
Recipe 1. 적극성과 확고한 의지로 새로운 기회를 얻다

훔볼트재단은 매년 나라,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개개인의 학문적 업적을 심사해 장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독일 정부의 지원금을 받고 독일과 모국을 오가며 연구를 진행할 기회가 제공된다. 지원대상은 박사학위를 마친 학자들이다. 훔볼트재단의 장학생은 140개가 넘는 국가와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포진해 있으며, 세계적인 석학은 물론이고 노벨상 수상자도 다수 포함돼 있다.
장학생 선발에 더해 올해에는 ‘차세대 연구리더를 위한 단기 체류 초청 연구프로그램’이 새롭게 시행되었다. 미래의 학문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젊은 학자를 독일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초청하고 3개월간의 공동연구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독일의 학문연구를 직접 경험하고 이를 통해 박사학위를 마친 후 미래의 훔볼트 장학생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차세대 과학자들을 발굴하고 키운다는 목적에 따라 지원대상도 박사과정생으로 정해졌다. 최누리 학생은 그 1호 대상자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학생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요. 지난해 가을, 훔볼트재단 펠로우이자 한국훔볼트회의 회장이셨던 이재성 특훈교수님께서 프로그램 관련 제안을 받으셨고, 정말 감사하게도 저를 추천해주셨습니다. 전공수업을 들으며 교수님을 개인적으로 찾아뵙고 독일에 유학 가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었어요. 제 확고한 의지와 진행 중인 연구 분야를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차세대 연구자를 지원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학문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업이다. 따라서 훔볼트회원으로 오랜 기간 독일과 연구 협력을 지속해온 학자들의 추천으로 후보자를 추렸다.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 선발된 이들은 추천 학자와 독일 대학 파트너 교수의 공동연구에 참여해 지도를 받게 된다. 3개월간 연구 체류에 필요한 모든 경비(항공료, 체류비, 보험료 등)도 지원받는다.

게르하르트 빌데 소장(Gerhard Wilde, 앞줄 오른쪽에서 4번째)을 비롯한 뮌스터대학교(University of Münster) 재료물리연구소 사람들.
최누리 학생은 ‘고엔트로피 합금에서의 원자 확산’을 연구중이다.
최누리 학생(왼쪽)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동위원소확산연구실을 이끄는 세르기 디빈스키 교수(Sergiy Divinski, 가운데)와 이재성 교수(오른쪽)의 공동지도를 받고 있다.
Recipe 2. 세계적으로 핫한 고엔트로피 합금 연구 선택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고 싶던 차에 지도교수이셨던 박주현 교수님께서 ‘고엔트로피 합금(High Entropy Alloy, HEA)’ 분야를 제시해주셨습니다. 마침 독일의 세르기 디빈스키(Sergiy Divinski) 교수님의 연구 분야도 같아 이번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모두 옆에서 이끌어주신 교수님들의 혜안과 도움 덕분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좋은 프로그램에 선정돼 기쁘고 뿌듯하다는 최누리 학생. 그는 석사 과정 2년 동안, 여러 학회에서 발표하고 기준 학점을 초과해 다양한 전공수업을 들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최누리 학생은 훔볼트재단이 선정한 차세대 연구자로서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독일 뮌스터대학교(University of Münster) 재료물리연구소 동위원소확산연구실에서 세르기 디빈스키 교수와 이재성 교수의 공동연구에 참여한다. 뮌스터대학교 재료물리연구소의 동위원소확산연구실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시없을 좋은 기회인 만큼, 더 노력해서 훌륭한 결실로 보답하겠다는 각오다.
“기회를 주신 훔볼트재단, 3개월 연구체류를 허가하고 환영해주신 뮌스터대학 재료물리연구소 게르하르트 빌데(Gerhard Wilde) 소장님과 디빈스키 교수님, 저를 추천하고 공동으로 지도해주시는 이재성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처럼 어떤 ‘소재’를 사용했는가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할 만큼, 인류 역사에서 소재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삶의 형태를 바꾸기 때문이다. 4차 산업시대를 맞은 오늘날 과학계는 새로운 소재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최누리 학생이 연구하는 고엔트로피 합금 역시 재료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핫한 연구 주제다. 고엔트로피 합금은 청동, 철강, 알루미늄 같이 한 가지 원소에 소량의 합금 원소를 첨가하여 성질을 강화하는 기존 합금과 달리, 여러 가지 구성원소를 모두 주원소로 삼아 비슷한 비율로 합친 다원계 합금이다. 극저온에서도 강도, 연성이 높아 우주로켓, 극지방용 선박, 액체가스 운반용기 등 극한 환경에서 사용 가능한 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고엔트로피 합금에서의 원자 확산’을 연구 중입니다. 고엔트로피 합금 내에서 일어나는 원자의 확산 즉, 각 원소가 결정립계 또는 결정 내로 어떤 확산 거동을 보이는지를 연구하죠.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공정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라 결과가 기대되는 연구예요.”
독일에 오기 전만 해도, 두 교수로부터 받는 공동지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지날수록 좋은 점이 더 많다고. 디빈스키 교수는 실험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조언을, 이재성 교수는 왜 이 연구가 필요한지 방향을 잡는 데 많은 조언을 준다고 밝혔다.

Recipe 3. 더 큰 노력이 요구되는 외국 연구

“뛰어난 교수님들께 다방면으로 배울 기회이기에 긴장되기도 설레기도 해요. 사실 연구실 생활은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요. 실험하고 토론하는 일은 비슷합니다. 저는 3개월만 머무는 상황이라 장비사용 권한을 얻지 못해 매번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해요. 그런데 다들 미안해하지 말라며 시간을 조율해주고 연구에 몰두하다가도 흔쾌히 도움을 줍니다. 하루하루 고마운 마음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어요.”
최누리 학생은 한국에서 공부할 때도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는데, 독일에서도 교수님들과 연구원들의 다양한 도움을 받고 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연구자를 목표하는 이라면 누구나 외국에서 세계적인 학자들과 함께하는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분명 다르다. 외국 연구실에 참여하려면 언어, 연구방식, 시간 관리 등 다방면에서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누리 학생 역시 한국에 있을 때보다 몇 배의 노력을 쏟는 중이다.
무엇이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은 없다. 하나의 기회, 작은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현명하게 내 것으로 만든 뒤에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위대한 성과는 단 한 번의 기회로부터 시작해 확장되기도 한다. 짧다면 짧은 3개월, 최누리 학생은 독일에서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인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써나가고 있다.

[ Mini Interview ]
자신의 꿈에 확실한 동기부여를!
재료화학공학과 이재성 특훈교수

“1986년 훔볼트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이후 한국훔볼트회 회장을 맡아 활동하는 등 저 역시 훔볼트재단과 인연이 깊어요. 현재 독일에서 진행 중인 고엔트로피 합금 연구는 우리나라 재료연구소에서 3D프린팅기술로 제조한 우수한 품질의 재료를 활용하기에 더 뜻깊습니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이룰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향후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 고엔트로피 합금의 입계확산거동에 관한 독창적인 결과를 얻어내고자 합니다.
이번에 최누리 학생을 차세대 연구자로 추천한 것은 연구 분야가 일치한 이유도 있지만, 독일 대학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고 학업 성취도와 언어 소통능력 모두 우수했기 때문이에요. 세계적인 연구자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꿈에 확실한 동기를 부여하고, 이를 성취하도록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확고한 의지와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기회는 항상 열려 있어요. 자신을 남과 비교하거나 쉽게 포기하지 않길 바랍니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