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을 생각할 때 고고학자가 주인공인 모험 영화 인디아나 존스(Indiana Jones)나 고대 이집트를 무대로 하는 액션 영화 미라(The Mummy)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고대 유적지에서 엄청난 유물을 찾고 감춰진 고대의 비밀을 푸는 것을 상상한다. 하지만 고고학의 진면목은 화려한 문화유산뿐 아니라 작은 토기 조각에서도 인류의 과거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다.

과거의 삶을 이해하는 학문, 고고학

고고학은 일반적으로 땅속에 묻힌 유물과 유적지를 통해 과거 사회의 성격을 이해하고 옛날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학문 분야다. 발굴이나 지표조사와 같은 야외 작업과 더불어 다양한 방법을 응용해 유적과 유물 탐사작업을 진행한다.
사실 고고학은 자신의 조상이 어떻게 살았나에 대한 궁금증과 다른 집단 또는 민족의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골동품 수집에서 출발했다. 18세기 유럽 상류층에서 그리스, 로마에 대한 동경과 함께 골동품 수집이 확산됐고,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 유적 발굴로 이어졌다. 고고학이 본격적인 학문으로 성장한 것은 과학이 발달한 19세기에 이르러서다. 고대 동물 화석 발견과 층서학의 발달,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을 밑거름으로 1836년 덴마크의 박물학자 톰센(1788-1865)이 자신이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과거를 구분하며 체계적인 고고학 연구가 시작됐다.
고고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은 1949년 미국의 물리학자 윌러드 리비(1908-1980)가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을 개발하면서부터다. 리비의 연구는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 개발을 목적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 결과는 큰 반향을 일으킨다. 고고학에서 탄소연대측정법이 중요하게 이용되며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의 수의로 사용했을 거라 믿어왔던 ‘토리노의 수의(Shroud of Turin)’다. 3개의 다른 실험실에서 진행된 탄소연대측정 결과, 중세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돼 커다란 논쟁을 낳았다. 자연과학적 유물 연구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탄소연대측정법은 현재 일반적인 고고학 연구 방법으로 꼽힌다. 이 여파로 전통 고고학은 1960년대부터 자연과학적 방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고고학은 탄소연대측정 외에도 생태학, 지질학, 기후학, 생화학, 유전학 등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자연과학적 방법을 수용해 유물을 분석한다. 기존 틀에 안주하지 않고 영역을 넓혀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인류를 연구하고 있다. 고고학은 인간의 활동을 복원하는 역사학, 사회학, 인문학적 영역에 있지만, 과거의 매장된 유물 즉 물질을 다루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인문학보다 자연과학적 성향이 강하다. 이처럼 유물의 자연과학적 분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고고학 분야를 고고과학(Archaeological Sciences)이라 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 태어난 융복합 학문이다. 현재 고고과학에서는 고대 유전자 분석, 안정동위원소 분석, 유기잔존물 분석, 미세 현미경 분석 등 다양한 자연과학적 방법이 이용된다.

고고과학으로 수십만 년 전의 DNA를 꺼내다

최근 고고과학에서 주목받는 분야로 유전자 고고학을 들 수 있다. 유전학의 발달로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수십만 년 전의 고인골, 동물 뼈와 식물 흔적, 토양에서 DNA 추출이 가능해졌다. 1980년대 복합효소 연쇄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PCR) 방법이 개발되면서 출토된 동식물과 사람의 조각난 유전자를 증폭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초기 연구는 이집트의 미라에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찾아 파라오의 모계 혈통 관계를 파악하거나, 시베리아의 동토층에서 발굴된 매머드 조직에서 유전자를 찾아내 코끼리와 유전학적 거리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고화석 유전자를 추출하는 네안데르탈인 게놈프로젝트 실시로 4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파악, 오늘날 유럽인의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 방법으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1868-1918)의 유골에서 유전자를 추출, 그의 무덤과 가족을 찾아낸 바 있다. 또 2012년 영국에서는 교외 주차장 바닥에서 발굴된 유골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 유골이 영국의 리처드 3세(1452-1485)임을 확인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장병의 유골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신원 확인에 활용한다. 현재 고고학과 유전학이 결합한 유전자 고고학의 연구 범위는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인간이나 동물의 조직은 다양한 화학원소(Chemical Element)로 구성돼 있다. 이런 원소들은 음식을 통해 사람과 동물의 몸에 축적되는데, 오래된 유기물일지라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면 사라지지 않는다. 유적에서 발굴된 동물의 뼈나 피부조직, 토양을 화학 분석해 과거 사람들이 소비한 음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원리다. 특히 탄소와 질소의 안정동위원소 분석(Stable Carbon and Nitrogen Isotope Analysis)을 이용하면 살아생전에 먹었던 음식을 추적하거나 활동한 주거지와 생활공간을 알아낼 수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 고분에서 출토된 사람 뼈의 화학적 구성을 확인하고 청동기와 신라 시대 사람들이 주로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확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불자리의 흙에 스며든 음식 찌꺼기나 기름을 분석하면 과거 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어떤 음식을 요리했는지 알 수 있다. 알래스카 인디언의 유적에서 발굴된 불자리 내 토양에서 지방질을 분석, 초기 알래스카 사람들이 매우 이른 시기에 연어를 사냥·가공했던 사실을 확인해냈다. 비록 유적지에는 아무런 음식물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어떤 음식을 요리했는지 추적 가능한 것이다. 이런 고고학의 화학적 분석 방법들은 오늘날 범죄 현장에서 증거물을 찾는 법의학 연구에까지 그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