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HYU 학술상 저서 부문 우수 연구자상의 영광은 일본학과 박규태 교수에게 돌아갔다. 이번 수상에 기여한 ‘한양대 일본학 국제비교연구소 비교 일본학 총서’ 제1권 <일본 신사의 역사와 신앙>은 2018년도 세종도서 학술부문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번 수상을 통해 연구의 의의와 가치를 인정받은 점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밝혔다.

신사는 일본 역사와 문화의 보고

박규태 교수를 만난 지난 5월 1일은 때마침 일본의 나루히토 왕세자가 제126대 일왕으로 즉위하면서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 시대를 여는 첫날이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202년 만에 이뤄진 일왕 생전 퇴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텐노(일왕, 학술적으로는 ‘천황’이라고 지칭)가 생전에 퇴위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일부에선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부디 아카히토 상왕의 평화주의 신념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일본문화와 일본사상, 그중에서도 국내에서는 드물게 신사와 신도를 연구하고 있는 박 교수는 일본의 거의 모든 역사와 문화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일왕제의 역사도 그러하다. 신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이세신궁이 일본 왕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를 제사 지내는 신사인 데다, 일왕의 장수와 안녕을 기원하는 등 고대 및 중세 시대에는 일왕 통치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또한 신사는 신도라는 일본 민족종교의 신전에만 머물지 않고, 일본인들의 삶과 친근하게 밀착된 생활공간으로써 일본의 전통을 대표하는 문화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현재도 마을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에는 가는 곳마다 신사가 있습니다. 신사는 일본의 역사 및 문화와 관련된 사료의 보고이자, 일종의 박물관이라 할 수 있죠.”

일본 신사에서 만난 한국

700쪽이 넘는 박규태 교수의 저서 <일본 신사의 역사와 신앙>은 이러한 일본 신사들을 지난 15년간 직접 발로 뛰며 정리한 방대한 필드워크의 역작이다. 오래된 신사들은 하루에 두어 차례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 외진 시골에 있는 경우도 있는데, 독도법에 서툰 박 교수로서는 지도 대신 현지인들의 안내를 나침반 삼아야 했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답사한 신사들이 천여 곳이 넘는다. 그중 가장 인상에 남는 신사는 큐슈 후쿠오카현에 있는 가와라신사.
“물어물어 어렵사리 가와라신사에 도착했더니 경내에 있는 큰 돌에 신라에서 건너온 국신이 제신이라는 <속일본기>의 구절이 새겨져 있더군요. 마침 신사를 관리하는 신직을 만나 시원한 냉차를 대접받았는데, 자신을 한국에서 건너온 하타씨(秦氏)의 후손이라 소개하며 반가워했습니다. 인상에 많이 남아 이번 책에도 같이 찍은 사진을 게재했죠.”
사실 일본의 신사 중에는 신라뿐 아니라 백제, 가야에서 건너온 신들을 모시는 신사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어 신사의 기원이 한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저서를 집필하며 얻은 큰 수확 중 하나도 일본의 신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한국에서 건너간 도래인 문화와 만나게 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일본인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신사 중 하나로 상업신을 모시는 이나리신사를 들 수 있습니다. 일본 전국에 4만여 개소나 되는 이나리신사의 총본산인 교토의 후시미이나리대사(伏見稲荷大社)는 711년 한국에서 건너간 하타씨가 세운 신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국내에서는 자취를 찾기 어려운 신사. 하지만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인들이 신궁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박 교수는 일본의 신사는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얼어붙은 한일관계, 인문학자의 역할은?

<일본 신사의 역사와 신앙>은 일본 신사들을 지난 15년간 직접 발로 뛰며 정리한 방대한 필드워크의 역작이다. 그는 외진 시골에 위치한 오래된 신사들도 방문하는 등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흠모했던 <독일인의 사랑>의 작가 F. 막스 뮐러의 궤적을 좇아 독어독문학을 전공하며 종교학을 부전공한 박 교수는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공부하던 중, 교내에 게시된 일본 문부성의 장학생 선발시험 공지문을 보고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시작은 과거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이 많으니 일본 정부가 준다는 장학금은 무조건 받아야겠다는 호기로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본 유학을 통해 박 교수의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일본 동경대학 종교학과에서 공부하면서 일본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특히 일본의 독특한 정신문화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해 공부하다 보니 오늘날까지 오게 됐네요.”
그 후 신사와 신도에 대한 연구를 줄기차게 이어온 박 교수. 이는 ‘가장 일본적인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많은 일본 학자들은 신도와 신사야말로 일본 전통문화와 사상의 뿌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신사는 제일 먼저 전범들을 합사한 야스쿠니신사를 떠올리게 한다. 일본의 총리나 유력 정치인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 때마다 비판적인 언론 보도가 이어지는 데,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냉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꼬집어 말하는 박 교수.
“우선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올바른 접근과 일본 신사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합니다. 물론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야욕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를 사실 중심으로 철저히 따져 모순과 잘못된 주장을 밝혀내는 것이 올바른 비판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윤리적 관점에서만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실효가 없으니까요.”
현재 한일관계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건강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 교수는 ‘한일 간의 참된 만남과 이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인문학적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자에게 주어진 사명과 책임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