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패션대전은 신인 패션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패션업계를 꿈꾼다면 누구나 도전해보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대회로 손꼽힌다. 매년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수많은 이의 꿈과 열정이 살아 숨 쉬는 대회인 만큼 패션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젊은 디자이너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난해 진행된 제36회 대한민국패션대전은 9월 1차 심사와 11월 컬렉션 PT 심사를 거쳐 6명의 최종 본선 진출자를 선발했다. 12월 본 행사에서는 갈라쇼를 통해 최종 수상자를 가렸다. ERICA에 재학 중이던 신은빈 씨는 금상(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욕망에 불을 지핀 프리다 칼로의 그림

패션업계 종사자는 물론 창업 예정자와 패션 전공 학생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지원한 이번 제36회 대한민국패션대전(이하 패션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신은빈 씨에게 2018년은 뜻깊은 한 해였다. 2019년 2월 졸업을 앞두고 받은 큰 상뿐만이 아니라 디자인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결정적인 순간’과 만났으니 말이다.

작년 초 신은빈 씨는 프리다 칼로의 1939년 작 <짧은 머리의 자화상>이라는 한 장의 그림과 만났다. 남편과 이혼한 이후 그린 이 자화상에서 프리다는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담담하게 의자에 앉아 있다. 바닥에는 잘려나간 머리카락들이 그의 복잡한 마음처럼 흩어져 있다. 사랑과 슬픔, 증오, 결기 등 여러 감정들이 충돌하며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었다. 프리다의 그림은 블랙홀처럼 신은빈 씨를 빨아들였다.

프리다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나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고, 열여덟 살에는 교통사고로 온몸이 망가져 수십 번의 수술을 거쳐야 했다. 평생의 연인이었던 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천하의 난봉꾼으로 프리다의 여동생과 외도를 했다. 아픈 몸으로도 아이를 원했지만 세 번이나 유산을 경험했다. 프리다는 그림을 통해 고통을 극복하고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현했다. 강렬한 색채와 초현실적인 표현도 그런 의지의 일환이었다.

“보는 내내 마음이 요동쳤어요. 사랑과 증오 등 복합적이고도 혼란스러운 감정이 매력적으로 읽혔죠. 특히 바닥에 깔려 있던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안에 프리다의 모든 감정이 다 담겨 있었으니까요. 작품을 보며 느꼈던 제 느낌을 옷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림 속 프리다 칼로가 마치 꽃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암울한 일생 자체가 고통이 절절하게 담긴 시든 꽃 같았다고. 그는 머리카락과 시든 꽃, 이 두 가지 화두를 바탕으로 자신의 새로운 패션 디자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여기에는 조각가 메레 오펜하임의 작품들도 큰 영감을 주었다. 평범한 소재들로 낯선 느낌을 주는 메레 오펜하임의
작품들은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스타일’을 창조하고 싶다는 그의 욕망에 불을 지폈다.

머리카락과 시든 꽃으로 표현한 화려한 옷, 그리고 갈라쇼

지난 12월 열린 제36회 대한민국패션대전 갈라쇼에서 신은빈 씨는 화려한 색감과 창의적인 표현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패션대전 본 행사에는 최종 본선에 오른 여섯 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갈라쇼가 열렸다. 각 디자이너는 자신 파트의 갈라쇼를 직접 연출했다. 신은빈 씨는 다섯 명의 모델이 입은 옷을 디자인하고 제작함은 물론, 갈라쇼 때 흘러나온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선곡했고 큰 화면에 등장한 디자인 일러스트도 그렸다. 모델들이 머리에 쓴 가발 역시 그녀가 직접 만든 작품이었다. 3분가량 진행한 갈라쇼에서 신은빈 씨가 중점에 둔 것은 프리다 칼로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머리카락과 시든 꽃이라는 두 가지 콘셉트를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장식으로 표현했다.

“프리다의 복잡한 내면이 담긴 머리카락을 옷에 표현하고 싶어서 길게 늘어뜨린 프린지 장식을 사용했어요. 가발도 일부러 얼굴을 덮도록 연출하여 혼란스러운 감정이 느껴지도록 연출했죠. 시든 꽃은 프리다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옷 전반을 꽃이 연상될 수 있는 색감으로 구성했어요. 등에는 시든 꽃 패치를 붙였고, 프린지 장식이나 의상 곳곳에도 시든 꽃 이미지를 넣었습니다. 시든 꽃이지만 색감은 아주 화려하게 구성했는데, 제게는 프리다가 그렇게 느껴졌거든요. 그림을 보면 고통스럽지만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이제 새로운 삶의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결기가 느껴졌죠. 그 의지를 표현하자면 화려한 색상이 필요했어요. 더불어 화려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직접 제작한 주얼리 장식도 옷에 담아냈는데, 이는 제가 ERICA에서 지난 4년간 주얼리·패션디자인학과를 다닌 덕분입니다.”

그는 프리다의 그림에서 느낀 감정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옷과 갈라쇼에 표현해냈다. 고통을 외면하기보다는 마주하면서 기꺼이 극복하겠다는 의지와도 같았다. 마치 프리다가 그러했듯 말이다.

낯설지만 매력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다면

대학 재학 시절에는 실용적인 디자인에 주력했다는 신은빈 씨. 그의 인생은 국내 패션 브랜드 기준(Kijun)에서 활동하는 김현우 디자이너와의 패션 스터디를 통해 완전히 바뀌었다.

“‘기준’은 과감하고 낯선 디자인을 선보이는 편인데, 그럼에도 대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어요. 트렌드를 좇는 대신 낯설지만 색다르고 매력적인 그의 디자인이 제게는 새로운 발견과도 같았죠. 덕분에 ‘과감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주얼리·패션디자인학과 이영재 교수 역시 신은빈 씨에게는 고마운 분이다. 보통 졸업작품전시회에는 지도교수의 개입이 있기 마련인데, 이영재 교수는 그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었다. 가능성이 있으니 해보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믿음이 그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고.
지난 1년 누구보다 깊게 고심하며 공부하고 간절하게 작업했다. 미술작품이든 노래든 일상이든 어디에선가 영감을 받으면 그 즉시 실행에 옮겼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땅을 팠다. 덕분에 그는 이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그동안 좋은 경험을 쌓은 덕분에 패션 디자인에 새롭게 눈을 뜰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부딪쳐가며 배우고 싶어요. 배움을 통해 낯설지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평소 색상과 패턴을 중요시하는 편인데, 새로운 색 조합과 다양한 패턴 창작을 통해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습니다. ‘색다른 디자인을 하는 사람’, ‘낯설지만 매력적인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 불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올 2월 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제 더 넓은 삶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삽을 들었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의 말(“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처럼 그는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패션 디자인의 깊이를 찾기 위해 삶의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해외 유학을 통해 디자인의 더 깊은 세계를 탐구하고 싶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