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한국 공연장에서 ‘떼창’은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가 됐다. 뮤지션들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는 국내 관객의 모습은 해외 언론에도 소개되며 화제를 낳았다. 한국에서 공연을 경험한 다수의 해외 뮤지션들 역시 공연장을 거대한 노래방으로 만드는 한국인들의 떼창 문화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법. 떼창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또한 적지 않다는데…. 최근 사회의 핫이슈를 살펴보는 신설 칼럼 ‘Syndrome’ 첫 회에서는 한국인의 떼창 문화에 대한 생각들을 엿본다.

<보헤미안 랩소디> 이전부터 유명했던 한국인의 떼창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잊지 못할 것이다.”
-뮤지션 비욘세

“세상에서 가장 미친 듯이 열정적이다.”
-밴드 뮤즈

“한국인들의 공연장 반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유럽 어느 도시를 가도 이런 반응은 나오기 힘들다.”
-뮤지션 노엘 갤러거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록밴드 퀸(Queen)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작년 10월말 한국에서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영화 상영 도중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는 ‘싱어롱 상영’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다는 데 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Bohemian Rhapsody’, ‘We will rock you’ 등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런 떼창 문화는 영화관에서는 생소한 편에 속하나 음악 공연장에서는 1990년대부터 해외 팝스타 공연은 물론 국내 음악인들의 대형 공연에서 흔히 있어왔던 일이다. 공연장은 물론 스포츠 경기장, 사람들이 일정 이상 모이는 집회에서도 노래가 빠지는 법이 없다. 떼창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린 뒤 떼창으로 성대하게 마무리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목격해왔으니.

생각해보면 노래는 우리에게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입으로 소리 내어 함께 노래 부르며 사람들은 삶과 일의 고단함을 잊었다. 노동요勞動謠가 생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가 한강은 자신의 산문집에서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정말 노래에는 날개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중략) 노래는 날개를 달고 우리 삶 위로 미끄러져간다. 노래가 없어서 그 날개에 실려 미끄러져가는 순간도 없다면, 우리 고통은 얼마나 더 무거울까.”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고 획일화된 문화를 강요했던 군사정권 시절과는 달리 이제 사람들은 목청 높여 마음껏 노래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날개를 단 노래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떼창 문화는 이제 한국인의 열정과 에너지를 상징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최근에는 K-POP의 인기를 타고 떼창 문화도 해외로 전파되고 있다. BTS(방탄소년단)의 해외 공연 도중 그들의 노래를 떼창하는 해외 팬들의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한국인의 열정과 기상을 보여주리라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하지만 좋은 취지에서 퍼진 떼창 문화가 다소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열정과 에너지를 분출하는 정도를 넘어 과열된 애국심을 보여주는 도구가 됐다는 지적이다. 힙합 뮤지션 에미넴(Eminem)은 2012년 한국 내한공연 당시 ‘손 하트’까지 날리는 적극적인 애정표현으로 화제를 모았다. 평소 무뚝뚝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이었던지라 미국 현지 팬들도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에미넴은 영어로 된 데다 길기까지 한 자신의 랩 가사를 일일이 따라 부르는 한국 팬들에게 감동을 받았다며 ‘당신들이 세계 최고 팬’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이에 에미넴의 일본 공연 당시 점잖기만 한 일본 팬들의 모습과 비교하며 우리의 우월한(?) 관람 문화를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공연장이 마치 국가대항전 분위기로 흘러가면서 이제 공연을 찾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늘 너희에게 한국인의 열정과 기상을 보여주리라’ 하는 자못 비장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해외 유명 뮤지션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적인 관람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얌전히 관람만 하고자 하는 이들은 난처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뮤지션의 목소리보다 관객들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니 애당초 음악 감상은 불가능하고, 혼자 가만히 있기도 애매하다. 남을 의식하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 익숙한 문화가 만들어낸 모습이다.

본래 우리에게 노래는 자유로움이자 위로,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노래 한 구절에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위로를 받고 다시 희망을 찾았다. 함께 부를 때 그 위력은 배가 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내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이들과 함께 ‘노래’를 매개로 하나가 되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다. 다만 강박적이고 과시적으로 강요하는 떼창 문화는 지양하는 것이 좋겠다. 획일적인 떼창보다 중요한 것은 ‘노래 부르고 듣고 생각하고 즐기는 모습’이 공존하는 자연스러운 관람 문화일 테니까.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