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계에는 ‘발굴은 또 다른 파괴’라는 말이 있다. 한 번 훼손된 문화유산은 다시 복구될 수 없는 탓이다. 그렇기에 문화유산을 발굴할 때는 온 마음을 다해야 하며, 그렇게 발굴된 문화유산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다시 숨을 쉬어야 한다. 이번 호에서 이야기 나눌 문화인류학과 안신원 교수가 문화유산에 대해 가진 생각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역사의 퍼즐을 찾아서

한양대학교박물관 5층의 고고역사실에는 화성 당성(사적 제217호)에서 발굴된 백제 시대의 ‘짧은 목 항아리’와 하남 이성산성(사적 제422호)에서 발굴된 ‘요고(고대의 타악기)’, ‘흙으로 구운 말’ 등 1979년 미사리 선사유적 발굴조사를 실시한 이래 한양대학교에서 발굴한 구석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수많은 유물이 전시돼 있다. 안신원 교수에게는 이 중 어느 것 하나 각별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양대학교 ERICA 문화인류학과 학생 시절부터 셀 수 없이 많은 발굴 현장을 찾아다니며 조심스럽게 트라우얼(Trowel, 모종삽 같은 발굴도구)로 흙을 걷어내 발굴한 유물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자면 아무래도 하남 이성산성 발굴조사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86년 이성산성 발굴조사를 시작할 당시 대학 3학년생이었던 안 교수가 조사단을 이끄는 책임자가 되기까지, 장장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져온 대대적인 작업이었다.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조사인 동시에, 자신의 고고학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안 교수.

“처음 참여할 때에는 조사단에 이름도 오르지 않았죠. 그러다가 책임자가 됐고 현재도 조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남 이성산성에서는 건물지와 철마, 토기류 등 다양한 유적·유물이 출토됐는데 이들은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삼국의 치열했던 패권 경쟁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성산성이 신라의 북상에 중요한 교두보였다는 사실이 새로이 밝혀졌죠.”

이렇게 현장에서 발굴된 기와 한 조각, 토기 부스러기는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지난해 진행했던 화성 당성 5차 발굴조사에서는 관사명이 새겨진 기와를 찾아 신라 관청이 있었음을 증명했다. 또한 청해진 등 주요 교역거점에서 발굴되는 9세기경의 중국 당나라 백자완편을 발견해 고대 중국과의 교역을 위한 관문이었음을 밝혔다. 이는 실크로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끝에서 밝혀지는 역사의 진실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유물들을 출토할 때 느끼는 희열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기록에는 있지만 실체가 없었거나, 기록에도 없던 유물을 발견하면 사라졌던 역사의 퍼즐 한 조각을 찾는 기분이죠. 그러한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이 학문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조각보처럼 얼기설기 세편들로 얽혀있는 토기들. 작은 조각 하나도 필사적으로 찾으려 했을 고고학자의 분투가 전해진다. 안 교수는 발굴조사에 임할 때면 학생들은 물론 자신에게도 모든 행위가 엄중하고 세밀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자신의 손끝에서 어떠한 역사의 한 조각이 밝혀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주로 수도 방어 및 교통의 요충지인 서울·경기 지역 유적지 발굴조사를 수행하고 있는데, 신석기 시대 유적인 서울 암사동 유적지(사적 제267호)와 왜구의 침략을 막고 왕실에 해산물을 공급하던 안산읍성 및 관아지(경기기념물 제127호), 안산향교(안산시 향토유적 제27호), 광주향교(경기문화재자료 제13호) 등 다수의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특히 안산 지역의 다수의 문화재 발굴조사를 수행해 2018년 안산시로부터 향토문화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32회 안산시 문화상 학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안 교수가 문화재 발굴조사만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2005년부터 3차에 걸쳐 일본 홋카이도에서 진행된 일제 징용 희생자 유골 발굴 작업에 참여했으며, 2007년 전남 구례의 여순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매장지 유해 발굴조사에도 참여했다. 유해 발굴조사 시에는 문화재 발굴 작업 때와는 또 다른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유해 발굴은 매장 풍습이나 매장의 정상성 여부로 강제징용, 민간인 학살 등 당시 사건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한편으로는 국가 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원혼을 달래주는 일이기에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죠.”

일상처럼 친근한 박물관과 문화유산

그동안 안 교수가 진행했던 발굴조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그가 문화인류학과를 전공하게 된 사연이 궁금해진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문화인류학과는 국내 대학에 몇 개밖에 없는 희소 학과였다.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특강 시간에 미래의 은사님이 될 한양대학교 ERICA 문화인류학과 교수님의 강연을 듣게 됐죠.”

그 이야기가 어찌나 흥미롭던지 그날로 문화인류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게 됐다는 안 교수.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한 후에는 방학이며 학기 중이며 가릴 것 없이 전국의 유적 발굴지를 찾아다녔다. 그래서 방학 중에도 남들 다 듣는 영어 특강 한 번 수강해본 적이 없다고.

“지도 한 장 들고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발굴 현장을 찾아 다녔습니다. 쉬는 날은 비가 올 때였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교통도 불편했을 텐데 어떻게 다녔는지 꿈만 같네요.”
안 교수에게 대학 시절은 그렇게 문화재 발굴에 온 열정을 다 바쳤던 시간이었다. 안 교수는 학생들에게도 진정으로 무언가에 미쳐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한 열정에서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생각이 움을 틔우는 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화재 발굴 및 연구를 수행하는 인류학자 및 고고학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절대 인공지능에 대체될 수 없는 직업군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품과 공으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어찌 보면 문화인류학 자체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지도 모른다. 안 교수는 문화인류학을 ‘사람에 대한 이해, 궁극적으로는 내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학문’이라고 소개했다. 최근에는 발굴된 문화재를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데, 단지 박물관에 고이 전시했다고 문화재 보존의 임무를 다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닿았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이 우리의 삶과 괴리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죠. 어릴 때부터 우리 삶과 직결돼 있다고 느껴야 자연스럽게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된다는 마음을 갖게 되니까요.”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한양대학교박물관 관장을 맡고 있는 안 교수는 이 박물관이 유물을 위한 박물관이 아니라 언제든 심심할 때 놀러 와서 구경할 수 있는 지역민들을 위한 박물관이 되길 바란다. 생활사 전시나 교육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다. 이것이 한 사람의 고고학자로서 안 교수가 마음을 쓰는 일이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