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필 교수가 지난 8월 화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미국화학회지에 ‘ZF’라는 다공성 거대분자 화합물 2종 합성법을 발표했다. 크고 복잡한 분자에 관심을 갖는 여타 연구자와 달리 가장 작은 분자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거대분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한 전 교수는 단순할수록 창의적인 발상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1년 6개월간 연구, 결실을 맺다

미술과 음악을 사랑하는 화학자 전형필 교수의 연구실에는 지난여름의 작렬했던 태양에도 여한 없이 활활 타올랐을 것 같은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가 걸려 있다. “유럽 여행 중 고흐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는데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열정이 느껴지더군요.”
그러했기에 예술가의 정열은 후대에도 당시의 격동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것이리라. 전형필 교수는 논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연구자가 얼마나 연구에 공을 들였는가는 그 논문을 읽는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법이란다.
전형필 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한 ‘지르코늄 개미산 거대분자 합성 및 거대분자의 수증기 흡착 특성 규명’에 관한 논문은 지난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꼬박 들여 몰두한 결과이다. 보통 논문 한 편을 완성하는 데 길어야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니 세 배나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그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본 논문은 지난 8월 7일 화학 분야 세계적 권위지로 알려져 있는 미국화학회지 온라인판에 실렸다.
“시작할 때부터 중요한 연구가 될 것이라 예감했습니다. 그래서 1년 넘게 매달렸는데 세계적인 학회에서도 그 성과를 인정받아 다행입니다. 이번 논문에 제1저자로 참여한 석사 과정 학생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을 것 같아 지도교수로서 기쁜 마음입니다.”
제1저자로 참여한 최종인 학생(응용화학과 석사과정 18)은 대학원에 입학한 지 반 년 만에 최고 권위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교수님이 잘 지도해주신 덕분입니다. 교수님께 현상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사고하는 법을 배웠거든요. 설령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지 못했더라도 이번 연구를 통해 배운 것이 많아 만족했을 것입니다.”

Simple is the best!

화학자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전형필 교수는 이번 연구로 ‘ZF’라는 다공성 거대분자 화합물 2종을 선보였다. ZF는 최근 화학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MOF(Metal-Organic Framework, 금속유기구조체)의 일종이다. 금속이온과 유기분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MOF는 2000년대 들어 새로 발견된 다공성 물질로, 물질 표면에 분자 크기의 기공이 규칙적으로 발달돼 있다. 때문에 가스나 수분을 흡착할 수 있어 산업적으로 높은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대기 중 수증기를 포집하면 사막처럼 건조한 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수분을 공급할 수 있고, 고온다습한 기후에서는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실내 습도를 낮출 수 있다. 현재 많은 연구자가 에너지 소비와 경제적 비용을 낮출 수 있는 MOF를 앞다퉈 개발하는 이유다.
그만큼 연구자 간 경쟁도 치열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연구자는 더 크고 복잡한 분자를 사용해 MOF를 합성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복잡할수록 더욱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형필 교수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가장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으로 새로운 MOF를 합성한 것이다.
“가능한 가장 단순한 접근방법으로 연구한다는 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다른 연구자는 크고 복잡한 분자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작은 분자로 거대 구조의 분자를 합성했을 뿐 아니라, 우수한 수증기 흡착 특성을 입증한 점이 타 연구와 다른 점입니다.”
전형필 교수는 가장 작고 단순한 카르복실산인 개미산(Formic acid)이 지르코늄 금속이온과 결합해 거대분자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을 규명했다. 연구 과정 중 MOF 합성에 이용되는 특정한 종류의 용매는 합성 반응 중 가수분해를 통해 개미산을 생성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점에 착안해 별도의 유기분자 없이 금속이온을 용해시켜 가열하는 것만으로 금속-개미산 분자 결정(ZF) 2종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합성됐지만 기능은 우수하다. ZF는 섭씨 25~45도 범위에서 수증기 흡착 능력이 저하되지 않으며, 특히 80% 이상의 높은 상대습도에서 매우 높은 흡착량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기존 상용 흡착제 대비 낮은 온도에서도 재생이 가능하다.

세상에 유용한 3차원 구조의 다공성 결정물질 탐구

본 논문이 에 실린 후 전형필 교수는 제자나 지인을 비롯한 수많은 이에게 축하 인사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일면식 한번 없는 머나먼 타국, 인도의 한 연구자가 보낸 축하 메일을 잊을 수 없다.
“논문이 온라인판에 게재된 지 이틀 후쯤 메일을 받았는데, 저의 단순한 연구방법에 감명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논문의 정수를 제대로 알아봐주는 코멘트였기에 더욱 고마웠습니다.”
사실 남과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깊고 넓은 창의력이 요구된다. 전 교수는 신입 교수 때부터 전 세계 수많은 연구자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평소에도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 새로운 환경과 자극을 즐겨 찾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새로운 연구를 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많이 다니는 편인데 새로운 발상이나 엉뚱한 생각을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올해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전 교수는 모처럼 팍팍하게 짜인 시간표에서 벗어나 새로운 논문을 읽거나 평소 해보지 않은 실험에 열중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에 논문까지 게재했으니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연구년이라 평할 만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구조를 밝히는 게 화학자의 즐거움이라 말하는 전형필 교수. 그는 천생 연구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전형필 교수의 궁극적인 연구의 목표는 무엇일까.
“새로운 물질을 연구하는 화학자로서 유용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물질을 분자 수준에서 설계하고 실제로 합성해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체 게바라가 그랬듯 연구자라면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형필 교수는 앞으로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3차원 구조의 다공성 결정물질에 관한 연구를 계속 수행해나갈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그것이 화학자의 길이기에.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