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업계에서 수술로봇을 활용한 수술은 3년 전부터 시행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연간 1만여 건이 진행될 정도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인다. 하지만 현재 쓰이는 수술로봇은 대부분 수입된 것들. 의료용 로봇 연구의 선구자로 꼽히는 이병주 교수는 국내 기술로 개발된 수술로봇들이 수술대를 장악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말한다.

두 개 정부 과제를 통해 로봇 시대를 앞당긴다?

정부는 지난 7월,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바이오·로봇 의료융합기술개발사업에 5년간 420억 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 4개 부처가 함께 추진하는 범부처 과제로, 현재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바이오·로봇 기술을 융합하여 혁신적인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정된 8개 과제 중에서 이병주 교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기반 혈관 중재 수술로봇 시스템 개발 연구’ 과제의 연구 책임자를 맡았다. 이 과제에는 전자공학부 이민식 교수도 참여하고 있다.
“혈관 중재 수술로봇은 인공지능을 토대로 내비게이션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원격으로 중재 시술을 하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절개로 시행하기 때문에 꿈의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집도의들이 수술 시 X-레이에 노출돼 방사선 피폭이 우려될 뿐 아니라, 혈관에 삽입하는 카테터(Catheter, 병을 다루거나 수술을 할 때 인체에 삽입하는 튜브 모양의 의료기구) 조작에 어려움이 있어 시술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확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혈관 중재 시술 로봇을 활용하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로봇을 활용하면 집도의는 콘솔이라는 장비에 앉아 3D 화면을 보면서 핸들을 조작한다. 그러면 환자 옆에 위치한 수술로봇은 집도의의 조작에 따라 카테터를 환자의 체내에 삽입하여 시술을 수행한다. 3D 확대영상을 보며 세밀하게 조작하기에 정확성과 정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 교수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정부 과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2018년 초부터 4년간 74억 원을 지원하는 로봇산업 핵심기술 개발사업 ‘인공지능 멀티 모달 센싱으로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물체를 인식하고 파지・조작하는 로봇작업 제어 기술 개발’ 과제의 연구 책임자를 맡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는 전자공학부 최영진・이성온 교수와 로봇공학과 이지영 교수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 과제는 로봇이 일상생활 환경에서 다양한 물체를 인식하여 스스로 작업 계획을 세울 뿐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들어 올리기·밀기·끌기·당기기·옮겨서 놓기’ 등의 동작이 가능하도록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로봇손’ 조작 기술이 현재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물체 정보와 위치를 정확히 전달해줘야만 비로소 작동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반면 이 교수팀은 물체 정보가 주어지지 않아도, 로봇손이 다양한 센서 정보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해석해 물체를 인식하고 파지・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로봇손은 인간처럼 시각과 촉각 등을 이용해 물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물체인식 기술의 진보는 일상생활뿐 아니라 제조, 물류, 건설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 활용될 수 있어 그 파급효과가 클 전망이다.

연구원들이 부비동(콧구멍이 인접한 뼈 속 공간으로 굴처럼 만들어져 공기로 차 있는 부위) 수술로봇을 작동하고 있다. 내비게이션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굴곡형 내시경과 수술도구를 부비동에 안전하게 삽입하는 로봇시스템이다.
인공 와우(달팽이관) 수술로봇을 작동하는 모습. 이는 안면 신경을 손상치 않으며 측두골을 안전하게 갈아내는 3D 내비게이션 기반의 로봇시스템이다.

로봇 연구의 선구자가 되기까지

이병주 교수는 지난 2003년부터 수술로봇 연구개발에 뛰어들어 국내 의료용 로봇 분야 발전을 이끌어왔다. 2008년에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김영수 교수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국내 최초의 수술로봇인 척추 수술로봇을 선보였다. 하지만 당시 기업들은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상용화를 주저했다. 선진국은 2000년에 이미 수술로봇 시대를 열었건만, 국내에서는 아직 시기상조였던 것. 하지만 이 교수는 이러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수술로봇 연구 개발에 몰입해왔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인지 현재는 일부가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뚝심 있는 추진력 덕분에 이제 그의 이름 앞에는 의료용 로봇 연구 분야의 선구자라는 수식이 붙는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어떻게 로봇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가 로봇 연구에 눈을 뜬 것은 학부 3학년 때 제어공학을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신세계를 만난 듯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꼈다는 이병주 교수.
“고전적인 과목들만 공부하다가 젊은 교수님께 제어공학이라는 것을 처음 배웠는데,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제어공학이 로봇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열망하던 이 교수는 이 과정을 거치며 로봇에 매력을 느꼈다. 신생 분야라서 제대로 된 교과서도, 학회도 없었지만 로봇공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이야 로봇공학이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각광받고 있지만, 이 교수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198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자동화 로봇 개발이 끝나 더 이상 로봇 연구는 진전될 게 없다는 분위기였다. 반면 국내에서는 자동화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다. 한마디로 공부를 해도 적용할 분야가 많지 않았다.
“당시 국내 현장에 로봇이 도입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씀하는 교수님들도 계셨지만, 전 하고 싶은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제가 관심 있는 로봇공학을 선택했습니다.”

수술로봇 상용화 임박

이제 머지않아 로봇은 산업 현장뿐 아니라 일상 영역에까지 광범위하게 도입될 것이다. 이 교수는 이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수술로봇이나 재활로봇 등 의료용 로봇에 대한 수요가 점점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10년 이내에 큰 시장이 형성될 것입니다. 정부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다양한 연구 개발을 지원하고 있고요. 일자리도 많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되니, 로봇공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은 꼭 로봇공학이 아니더라도 소속이 어디든 스스로 찾아다니며 배우려는 자세와 전문성을 키워야 합니다.”
㈜고영테크놀러지와 지난 5년간 산업통상자원부 지원 국가 과제를 통해 개발한 뇌 수술로봇은 현재 임상시험 중으로 상용화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 이 교수가 국가과제에 참여해 처음으로 수술로봇을 상용화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다음은 이비인후과 수술로봇 차례. 이번에 수주한 혈관 중재 수술로봇 연구과제 역시 상용화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분야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면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저는 수술실에서 제 연구로 태어난 수술로봇들이 쓰이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국내 의료용 로봇 연구 분야를 개척한 이병주 교수. 이 교수의 연구들이 드디어 하나하나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그렇게 바랐던 로봇수술의 대중화와 국민건강 증진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