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비단 나이를 먹고 체형이 커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단어 안에는 한 사람의 세계가 폭넓어진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을 것. 박해민 동문은 고등학교 때까지 내야수로만 뛴 데다 수비가 약점으로 취급되던 선수였다. 2012년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해 신고(육성) 선수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2군만 해도 이미 자신만큼 치고 수비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해 보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한국프로야구 3년 연속 도루왕에 국내 최정상급 외야수로 평가받으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동안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신고 선수로 프로에 입문하다

무더위가 온몸을 덮치던 지난여름, 잠실야구장에서 원정 경기를 준비하는 박해민 동문을 만났다. 201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박해민 동문은 주루와 수비에 능한 국내 대표 1번 타자로 통한다. 2014년부터 주전으로 도약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꾸준히 능력을 향상시키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다. 뛰어난 낙구 판단과 빠른 발을 활용한 넓은 수비 범위가 빛을 발하며 외야 수비에서도 국내 최정상급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이제 많은 2군 및 신인 선수들의 롤모델로 손꼽히는 박 동문이지만 처음부터 빛을 발했던 것은 아니다.
“2012 KBO 드래프트 나갈 당시 대학 선수 중 타격 성적(4할 2푼 9리)이 가장 좋았습니다. 때문에 쉽게 뽑힐 줄 알았고, 프로에서도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지명이 되질 않았죠.”
고등학교 때까지 내야수로만 뛰던 그는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후 야구부 감독 및 코치진들에게 외야수로 전향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내야수로 뛰기에는 송구 등의 수비 문제가 지적된 것. 내야수라는 포지션에 애착이 많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했다.
“외야수를 쉽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어려운 포지션에 적응하기 위해 새벽 넘어서까지 연습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4년 동안 갈고닦았지만, 전문가들에게 그는 타격이 좋을 뿐 나머지 부분에서 그리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외야 수비는 대학교 들어서야 전향했고, 도루는 대학 통산 7개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드래프트 직후, 그의 가능성을 본 삼성 라이온즈는 그에게 신고(육성) 선수로 입단하라는 제안을 보낸다. ‘신고 선수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1군 주전의 열쇠- 주루와 수비

신고 선수는 쉽게 말해 연습생으로 신고만 되어 있을 뿐, 정식 등록 인원에는 포함되지 않는 비정규직이다. 리그 최저 연봉을 보장받지 못하며 당장 언제 퇴출당할지 알 수 없다.
“훈련 과정을 지켜본 코치님들은 제게 주루와 수비를 강조하셨어요. 둘 모두 센스가 있으니 열심히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였죠. 그때부터 타격이나 다른 부분도 열심히 했지만, 특히 이 두 가지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후에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는 대학 때와는 달리 프로에서는 일주일에 여섯 번은 경기에 나서고, 매일 훈련을 했다. 그는 직접 부딪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프로 세계에 맞게 만들어나갔다. 시간과 땀이 쌓일수록 요령이 보였고, 그럴수록 두 눈 앞에는 프로야구의 더 넓은 길이 보였다.

람보르미니가 되기까지

박 동문은 야구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손꼽는다. 우승 외에 2014년이 각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해 비로소 팀의 주전 외야수이자 1번 타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36개 도루를 기록한 그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에 오르며 국내 최고의 리드오프로 성장했다. 팬들은 그가 자동차 람보르기니처럼 빠르게 질주한다며 ‘람보르미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 당시 김평호 코치님이 도루를 세심하게 알려주신 덕분에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어요. 가르쳐주신 내용을 실전에 적용하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습니다. 도루를 잘하려면 상대 투수의 버릇을 유심히 관찰해야 해요. 그리고 변화구 때 뛰는 게 시간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으니 그 타이밍을 파악하려고 애쓰죠. 도루할 때는 그저 ‘한 베이스 더 나가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중요한 건 제 기록이 아닌 팀의 승리니까요.”
수비 역시 마찬가지다. 외야 전향 직후 ‘수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따랐지만 대학 때도 프로에서도 그는 묵묵히 연습에 매진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타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기만 해도 대략 어느 방향으로 공이 오겠다는 감이 생겼다.

 

박해민 동문은 준수한 타격과 탁월한 외야 수비뿐 아니라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하며 주루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사진 : 삼성 라이온즈)

매일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다

야구 선수들은 무더위는 물론 주변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모든 것이 컨디션과 직결되니까 말이다. 박 동문이 컨디션을 유지하는 비결은 간단했다.
“잠을 많이 자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그래야 몸이 충분히 회복될 수 있거든요. 그 밖에는 체력 보강 차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요.”
충분한 수면을 취하며 컨디션 유지에 힘쓰는 건 물론 리그 일정 때문이지만, 올해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8월부터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이 떠오른다는 그는 특히 대학 시절 자신을 지도하고 보살펴준 당시 감독 및 코치진, 그리고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원했던 모교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야구에 대한 고민이 많던 대학 시절에 좋은 감독님과 코치님들을 만나 외야수라는 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든 측면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인간적으로도 잘 챙겨주셨죠. 프로 세계에 대한 조언도 해주셨고요.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한양대 야구부 자체가 대학 야구의 명문이잖아요? 학교 측 지원이 워낙 좋았고 야구부 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서 훈련과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태극마크는 쉽게 달기 힘든 만큼 어떤 선수나 동경하는 일일 테다. 그는 자신이 주전이라 생각하진 않는다며 대주자로 나가든, 대수비로 나가든 최선을 다해 우승에 일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보다 빠르게 뛰어 베이스를 훔치고, 한 발 앞서 수비하며, 더 정교하게 타격하고자 노력한다. 마치 노력만이 자신의 가장 큰 무기라는 듯이.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는 람보르미니라는 별명 외에도 ‘허슬 플레이를 하는 선수’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 역시 그 수식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기 때문에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팬들도 그런 제 모습을 좋아해주시고요.”
그의 몸은 처음 야구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하지만 성장한 것은 몸뿐만이 아니다. 야구를 대하는 그의 성실함은 ‘그’라는 세계를 좀 더 넓고 여유롭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 세계는 얼마나 더 넓어질까. 그리고 그 안에는 얼마나 매혹적인 야구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가. 그곳에서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야구와 이 세계를 배워나가고 있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