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를 끈 TV 오락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 소개되어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 페루는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나라는 아니다. 안데스 산맥과 잉카문명 정도가 알려져 있을까. 항공 직항편이 없어 다른 곳을 거쳐 가야 하는 머나먼 나라 페루에서 한 청년이 한국식 눈꽃빙수 가게를 열었다. 왜, 어떻게, 언제 빙수 가게를 열게 됐을까.

미스터 빙수는 개업 이후 페루의 TV 인기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미스터 빙수

2017년 4월 지구에서 대한민국의 정반대에 위치한 페루의 수도 리마에 ‘미스터 빙수’라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 표지도 동문은 고등학교 동창 김주엽 씨와 함께 이 가게의 대표를 맡고 있다. 빙수라는 음식 자체가 생소했던 페루에 미스터 빙수는 이내 화제를 몰았다. TV 프로그램에서 취재 요청이 이어졌고,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201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미식 관광지로 선정된 데다, 다디단 디저트가 많기로 유명한 페루에서 미스터 빙수는 어떻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페루 사람들은 본인들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커요. 유명한 만큼 맛있는 디저트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다만 저는 맛이 단조롭다고 느꼈어요. 다디단 음식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죠.”

표 동문이 친구와 함께 내세운 ‘한국식 눈꽃빙수’는 생과일과 우유의 조화로 기존 페루 디저트와는 다르게 건강한 맛이 장점이었다. 가게 오픈 전 시장조사를 해보니, 단 음식에만 길들여진 페루 사람들은 생소하지만 신선한 맛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오픈 이후 페루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국 식문화를 알리기 위해 들여온 한국 과자나 음료, 라면 등도 인기가 좋았다.

인기 있는 메뉴로 손꼽히는 딸기 빙수와 망고 빙수

페루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표 동문에게 남미 대륙은 낯설지 않은 곳이다. 어린 시절 남미 대륙으로 이민을 간 큰 이모와 사촌들은 한국에 올 때마다 인디언 인형이나 알파카(소목 낙타과의 포유류) 털로 만든 옷을 선물해주었고, 그들을 통해 그는 남미 대륙을 막연히 동경하며 자랐다. 덕분에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스페인어를 전공했다. 처음으로 남미 대륙을 밟은 건 ERICA 재학 시절이었다. 어학연수프로그램을 통해 멕시코에 다녀온 그는 스페인어는 물론 중남미 문화를 더 알고 싶어 2014년 8월, 이번에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페루에 갔다. 교환학생으로 1년을 보내는 동안 그는 페루의 다양한 음식과 디저트를 접할 수 있었고, 당시 한국에는 이미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았던 ‘눈꽃빙수’ 사업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CEO였어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른 사람 밑에서 수동적으로 일하는 게 싫었거든요. 망해도 젊을 때 망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있었던 터라 창업을 생각하게 된 거예요.”

ERICA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학부 특성상 창업을 지지하는 분위기 덕분에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재학 시절 수강했던 ‘경영자료분석’에서는 창업을 가정하여 사업계획서를 써보기도 하고 분석하고 발표했던 경험이 있는데, 이는 실제로 가게를 낼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처음부터 빙수 사업으로 직행했던 것은 아니다. 한국 화장품을 가져와 보따리장수가 되어 팔아보기도 했다. 그 밖에 디지털 도어록이나 케이팝 관련 물품 등 생각해본 창업 아이템은 많았다. 하지만 그중 한국식 눈꽃빙수가 가장 성공성도 높고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도상 열대와 아열대로 구분되는 페루는 상당히 따뜻한 편이라 아이스크림이 인기가 많았지만, 정작 차가운 디저트 종류는 다양한 편이 아니었다고. 표 동문과 친구 김주엽 씨는 빙수를 생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틈새시장을 잘 노린다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낯선 타지에서의 창업이 쉬웠을 리 없다.

“한국의 눈꽃빙수 기계와 그 밖의 부속 기계를 페루로 들여오는 일, 회사를 설립해 사업등록을 하고 영업허가서와 위생확인증 등을 받는 절차 등이 까다로웠어요. 복잡한 일들을 처리하려면 더 많은 스페인어 공부를 해야 했죠.”

그는 가게 차릴 공간을 구해서 직접 바닥과 벽에 수도와 전기를 끌어왔다. 시멘트 작업과 페인트칠도 직접 했다. 힘들거나 모르는 일이 닥칠 때면 교환학생 때 숙소에서 인연을 맺은 페루 가족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몸으로 때웠지만, 현지 사정을 정확히는 모르는지라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주변 이웃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페루 사람들은 친절하고 흥이 많아요.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도 많고요. 그분들 덕분에 가게 인테리어를 저렴하게 할 수 있었어요. 제가 인복이 많은 사람 같습니다.(웃음)”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2017년 4월 미스터 빙수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물론 입소문을 통해 손님이 모였고, 페루의 인기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영광을 누렸다. 특히 빙수의 계절이라 할 수 있는 여름에는 빙수 한 그릇 먹기 위해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긴 시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 때문에 불만을 터뜨리는 손님이 빈번할 정도로 말이다.

“1시간 이상 기다렸던 손님들이 빙수를 드시고는 제게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칭찬해주실 때 정말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 더 고객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맛있는 빙수를 개발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미스터 빙수는 SNS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의 반응이 뜨겁다. 특히 페이스북 공식 계
정은 1만 8,000건이 넘는 ‘좋아요’를 기록하고 있다.

남미 전체를 아우르는 프랜차이즈를 꿈꾸며

페루에서 미스터 빙수 대표로 자리를 잡기까지 그에게는 얼마나 많은 터닝 포인트가 있었을까. 그는 세 가지를 꼽았다.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첫 번째예요. 중학교 때 공부를 좀 해서 제가 잘난 줄 알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해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생각이 폭넓어지는 데 도움이 됐어요. 두 번째는 ERICA 응원단으로 활동한 일입니다. 겉은 화려해 보여도 사실 굉장히 힘들어요. 연습과 무대를 반복하다 보니 체력이 좋아졌어요. 응원단 분위기가 워낙 좋았기에 지금도 힘들 때면 가끔 그때를 떠올리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손꼽은 터닝 포인트는 ‘지금 이 순간’이다. 페루에서 사업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태평양을 건넌 그의 세 번째 터닝 포인트는 아직 진행 중인 것 같다고.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바뀔 것임을 잘 알기에 매사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 가족이 그리울 때가 많다. 친구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은 페루에서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에 닿기 위해서는 아직 먼 길을 더 가야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그의 목표는 미스터 빙수를 남미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당장 2호점을 준비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하지만 꼭 이루고 싶습니다. 대략 7년 안에는 다른 남미 지역에도 미스터 빙수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키우고 싶어요.”

표 동문은 특히 한양대학교 ERICA 졸업생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동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5년, 10년 후에 그는 어느 자리에 올라 있을까. 그의 말처럼 ERICA를 대표하는 CEO로 성장하게 될까. ‘미스터 빙수와 표지도’라는 이름이 남미 대륙을 호령할 그날이 기다려진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