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특정 분야의 식견이 높은 사람)’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세상 곳곳에는 컴퓨터와 영화, 애니메이션, 동물, 버스, 도시락 등 다방면의 덕후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잠깐, 덕후란 대체 누구지? 이상한 외곬? 유쾌한 전문가? 덕후, 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덕후, 그들이 우리가 되기까지

6년 전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의 스탬프를 받기 위해 4개국을 돌아다닌 두 한국 청년이 있었다. 2012년 6월 에반게리온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프랑스·미국·일본·중국 4개국 특정 장소에서 일정 기간 비치된 스탬프를 찍어오면 상품을 주겠다는 내용)를 본 그들은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하겠느냐’며 이를 실행에 옮겼고, 결국 세계에서 유일하게 4개국 스탬프를 받은 덕후 중의 덕후가 되었다. 두 한국 청년은 각자의 일(컴퓨터 프로그래머, 애니메이션 관련)도 제쳐두고 에반게리온 여정에 올인했다. 무언가 엄청난 일을 벌인 것 같지만, 실상 그들이 원하는 건 별다른 게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걸 제대로 좋아해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누구나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매료된 ‘순간’이 있었다. 매료된 무언가에 몰입하며 행복을 느끼던 그때. 하지만 제대로 좋아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은 대개 그 순간을 잊고는 한다. 덕후는 에반게리온 여정의 청년들처럼 그 순간을 잊지 않은 사람들일 뿐이다.

2018년 봄호에는 덕후라 불리는 우리의 이웃들과 만난다. 서울SF아카이브 박상준 대표는 SF 덕후였던 자신의 기질을 살려 국내 SF 전문가로 자리 잡았고, 게임을 좋아했던 디미콜론 이현준 대표는 VR게임용 컨트롤러를 만들고 있다. 그 밖에 고양이와 야구카드, 엽서, 금속배지 등 다양한 덕질을 즐기는 ERICA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전보다 더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자신의 덕질을 밝히면서 세상과 소통해나간다.
자신에게 행복을 주는 순간들을 제대로 즐긴다. 덕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가며 ‘그들’이었던 덕후는 이제 ‘우리’가 되고 있다. 우리에게 덕질은 어떤 의미일까. 삶의 활력소? 조금 깊은 취미?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장 같은 것? 특별하거나 특이한 행동이 아니라,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일 수 있음을 말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