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관련 칼럼과 각종 강연 및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국내 SF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박상준 대표가 그 주인공. 학창시절부터 SF소설과 과학 관련 잡지를 찾아다니며 ‘덕질’을 했다고 하는데…. 비평가보다는 SF 해설가로 불리길 원하는 박상준 대표를 만났다.

SF를 덕질하던 소년이 독보적인 SF 해설가가 되기까지

세상 만물에 호기심이 많던 소년의 꿈은 과학자였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라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계를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다. 과학을 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SF(Science Fiction)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우리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미래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이런 문제들을 상상력을 발휘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것이 SF라는 장르예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빠져들었어요.”
그 소년은 이제 우리나라 SF 분야의 독보적인 해설가가 되었다. 자신의 작업실을 ‘서울SF아카이브’라 칭하는 박상준 대표의 이야기다. 그가 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는 문고판 외에는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SF소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헌책방에서 원서를 사 번역을 하며 읽었다. ERICA 재학 시절에는 과학 잡지 <디스커버리>에 연재되던 칼 세이건의 SF소설 <콘택트>를 학과 친구들과 함께 번역하기도 했다.
SF 작품을 섭렵해나간 그는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작품들을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국내 SF의 수준을 높임은 물론, 그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미래를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그의 작업실 서울SF아카이브에는 그동안 그가 쌓은 노력과 고민들이 담겨 있다. 과학 및 SF 관련 책과 영상물은 물론, 곳곳에 쌓여 있는 몇 십 년 전 과학 잡지들에서 그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한 분야에 깊이 빠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뿌리를 찾게 되죠. 저 역시 국내 SF 소설들의 뿌리가 궁금해 도서관과 헌책방 등을 찾아 다녔어요. 1960년대에 나온 <학생과학>이나 일제강점기 때 나온 <과학조선> 같은 과학 잡지들에는 해외 유명 SF소설이 번역되어 있음은 물론, 국내 작가의 SF소설이 소개되어 있었죠.”

SF는 미래를 보는 망원경

20년 넘게 소설은 물론 그 속에 담긴 과학 관련 콘텐츠를 섭렵하며 박상준 대표의 지식은 깊어졌고, 시야는 더 넓어졌다. 덕분에 SF와 과학기술에 대한 칼럼 집필은 물론 강연 요청도 잦다. 그는 강연을 준비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한다.
“대개의 훌륭한 SF 작품들은 허무맹랑하게 미래사회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충분한 고민을 통해 미래사회를 예측해내죠. 때문에 강연을 할 때에 많은 준비가 필요해요. SF 작품에서 어떤 전망을 보여주었다면 그게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실현되려면 어떤 과학기술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과학기술은 현재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지 등등을 공부해야 하죠.”
박상준 대표에게 SF는 ‘미래를 보는 망원경’인 셈이다. 물론 미래에 긍정적인 면만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는 SF를 읽으면서 과학기술과 함께 과학윤리와 같은 문제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컨대 과학윤리에 소홀하면 1945년 일본 히로시마의 원자 폭탄 투하처럼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SF를 토대로 미래에 대한 입체적인 생각을 기를 수 있어야, 빠르게 변화하는 문명사회에서 자멸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현명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를 최소 열 번은 채워라

그는 수십 년 동안 SF 작품을 ‘덕질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자리를 만들어냈다. 각종 언론과 강연 및 문학상에서 그의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요즘 말로 ‘덕업일치’를 이룬 셈이다. 숱한 청춘들이 덕업일치를 꿈꾸는 요즘, 그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다만 인터넷이 발달된 정보 네트워크 사회인만큼 젊은 세대에 유리한 지점이 많은 건 사실이죠. 우경민 동문(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02)의 케이스가 긍정적인 예가 될 수 있어요. 자신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자니 익스프레스>를 동영상 사이트 비메오와 유튜브에 올려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잖아요. 미국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 제의를 받기도 했고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꾸준히 생각해보고 그걸 실천할 수 있다면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그는 특히 ERICA 후배들에게 ‘실패를 최소 열 번은 채운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전해보라고 강조했다. 길고 넓은 시야를 갖고 도전해야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인류의 미래를 엿보는 그의 작업실

자동차 자율주행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인간과 소통도 할 수 있는 기기들의 등장도 이제 꿈이 아닌 현실이다. 그는 우리가 과거에 대해 배우듯,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충분히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는 학생들에게 역사는 가르치면서도 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느냐는 말을 했어요.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를 잘 배우고 이해해야 인류의 미래가 좀 더 밝아진다고 생각해요. 학생 개인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거고요.”
그에게 SF소설을 읽는다는 건 미래를 대비하는 일 중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다. 일이 곧 놀이이고, 놀이가 곧 일이 되는 셈. ‘새로운 과학기술의 등장은 인간의 생각과 심리를 어떻게 바꿀까?’ ‘사회의 이념, 철학, 법과 제도는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게 될까?’ 박상준 대표의 작업실 ‘서울SF아카이브’는 오늘도 이런 생각들로 가득할 테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작업실에서 인류의 미래를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꼭 읽어봐
-박상준 대표가 후배들에게 추천하는 SF소설

1.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국내에 2017년 개봉한 영화 <컨택트>(Arrival)의 원작 소설이 담긴 소설집이에요. 테드 창은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과학도이자 현재 가장 뛰어난 SF소설가 중 한 명이죠.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을 읽어보면 SF가 과학뿐만 아니라 종교, 언어학, 사회학 등등 매우 다양한 분야들과 연관되어 상상력을 펼치는 장르라는 걸 알 수 있죠. 새로운 경지의 즐거움을 깨닫는 기회가 될 겁니다.”

2. 류츠신, <삼체>(전 3권으로, 국내에는 2권까지 번역돼 소개)

“최근 중국 SF소설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2015년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은 그중 선두주자라 볼 수 있어요. 과 학기술적 상상력을 중시하는 하드SF 계열의 작품으로 인문학적 묘사나 서술의 치밀함 또한 놀라워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도 휴가 때 탐독했다지요. 외계의 지적 존재와 접촉이 일어나면서 인류의 운명이 어떻게 요동치게 되는지를 ‘대륙의 스케일’로 멋지게 풀어냈습니다. 이공계열 공부를 하면서 과학적 상상력에 관심이 많은 ERICA 후배들에게 필독을 권합니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