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A 재학 시절 최다현 씨는 하고 싶은 게 많은 학생이었다. 디자인 전공으로 ERICA에 입학했지만 창업을 위해 광고홍보학과 과정을 함께 이수했고, 세계여행을 꿈꾸어 그 계획을 실행했으며,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기 위해, 생각한 대로 실천하며 살아왔다.

9개월 동안의 짠내 투어

올 2월 ERICA를 졸업한 최다현 씨의 페이스북에서 눈에 띈 건 상세한 세계여행 기록이다. 2015년 11월 26일부터 2016년 8월 9일까지 총 258일 동안의 이동경로와 경비,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쉽지 않은 경험을 스스로 개척해낸 이 청춘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세계여행은 어떻게 다녀오게 된 걸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눈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했지만 경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어쩌면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찾아왔을 때 그는 좌절하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넓은 세상을 탐험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노트북 한 대와 약간의 물품만을 배낭에 담은 채 세계여행에 나섰다. 말레이시아에서 여행을 시작한 그는 인도를 거쳐 터키와 헝가리,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으로 향했다. 그다음은 아메리카 대륙이었다. 브라질에서 시작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 미국, 캐나다를 거쳤다. 마지막 여행지는 대만이었다. 9개월 동안 세계 16개국 52개 도시를 여행하는 동안 총 여행 경비는 710만 원에 불과했다. 16개국을 700여 만 원으로 다녀왔다? 어떻게 이런 ‘짠내 투어’가 가능했던 걸까?
“비행기는 저가 항공사를 이용했어요. 식사는 최대한 싸게 해결하고, 숙박은 ‘카우치 서핑’과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를 주로 이용했죠. 카우치 서핑은 현지인이 여행자를 위해 자신의 소파나 방을 제공하는 서비스예요. 유럽과 중남미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데, 숙박을 제공하는 이들은 대개 다른 문화권에 호기심 많은 이들이에요. 저는 며칠 잠잘 곳을 공짜로 빌리는 대신, 그들에게 한국 이야기를 해주거나 한국 요리를 대접했죠.”
혈혈단신 여성의 몸으로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걱정은 없었을까. 이에 그는 카우치 서핑에 등록된 여행 후기를 면밀히 검토해 안전한 현지인들 위주로 선택했다며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 도중 몇몇 나라의 남성들에게 성희롱을 당했던 일은 그를 분노케 했다. 성희롱의 심각성을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특히 인도와 남미 지역에서 접근하는 남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여행 전체로 보면 좋은 기억이 더 많았다. 멕시코 칸쿤 해변의 그림 같은 풍광과 터키를 비롯한 각지에서 맛본 맛있는 현지 음식, 그리고 낯선 여행자에게 축복을 건네던 사람들은 아직도 그의 맘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키득거리며 창업 준비하기

여행 다니는 동안에 꼬박꼬박 그림일기를 그렸다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단순히 감정만이 아니라, 하고 싶고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고는 했다. 2016년 여름, 여행을 다녀온 그는 학교에 복학한 뒤 그 일기에 적힌 일들을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창업동아리 활동이 첫 번째였다. 디자인과 함께 광고홍보학을 공부했던 것도 실은 창업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다고. 기획과 마케팅, 회사 경영 등을 두루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남의 밑에서 일할 성격’이 아니라고 느꼈다는 그는 친구와 의기투합해 창업동아리 ‘키득키오’를 만들고 독립출판물 제작에 들어갔다. 제목은 이른바 <본격 취향탐색! 조금 이상한 스킨십 44가지>. 연인끼리의 스킨십은 놀이라는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스킨십은 사람들이 선뜻 꺼릴 수 있지만 분명 필요한 이야기예요. 동아리 이름처럼 키득거리며 즐겁게 읽을 만한 책을 만들고 싶었죠.”
이후 그는 학교 창업지원센터의 소개로 창업프로그램에 참여해 창업에 대한 이론을 배움은 물론 현장 실습을 통해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 과정을 이수하면서 그는 뜻이 통하는 창업 파트너를 만났다. 그는 그 친구와 또 다른 창업을 계획했다. 성희롱 예방 교육 게임을 비롯해 의미 있는 게임을 만들어내는 게임회사를 차려보자는 것. 세계여행을 하면서 체감한 성희롱 및 성폭행의 심각성은 곧 우선적으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다루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는 예방 교육을 딱딱하지 않게 재미난 게임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과 회사 경영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 필요했다. 파트너는 사회적기업에 입사해 경영과 관리를 배우고, 그 자신은 게임회사에 들어가 게임회사의 시스템과 노하우를 배우기로 했는데 이를 통해 창업을 이뤄보자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작년 7월부터 올포펀(All for Fun)이라는 게임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UI 디자인을 맡고 있어요. 처음 해본 일이지만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겼죠. 짧지만 몇 개월 일하다 보니 이제는 ‘어떤 것이든 디자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뿐

여태까지의 인생이 물론 뜻대로 된 것만은 아니다. 의욕 있게 만든 독립출판물은 재고가 가득하고, 창업동아리는 결국 흐지부지됐다. 이후 창업프로그램에서 만나 함께 동업을 계획했던 친구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창업이 아닌 직장인의 삶을 선택했다. 그도 때때로 불안하고 걱정한다. 돈벌이 때문이든, 앞으로의 미래 때문이든, 그 무엇 때문이든. 다만 좌절하면서 고여 있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스스로를 ‘나답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최다현 씨 뿐만이 아니라 대개의 사람들 마음에는 여러 가지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그중 대부분은 한두 개쯤을 선택한 뒤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며 만족한다. 누군가는 아예 다른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최다현 씨는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구 대부분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원하는 삶은 간단명료하다. 자신의 젊음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싶은 게다. 당장 지금의 최우선 목표는 창업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것.
“창업을 하면 제가 원하는 곳에서, 업무 환경을 직접 만들어 일할 수 있잖아요. 생각한 대로, 저답게 살 수 있으니까 창업을 택한 거죠.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차피 이룰 거니까요.”
6개월 후, 1년 후 그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세계여행 전에 걱정했던 눈 상태가 이제는 괜찮다며 웃는 그는 앞으로 출판사를 차려 전자책을 내보고 싶다 한다. 게임 회사 창업도 구체적으로 실천할 계획이다. 사회활동가나 바닷속을 유영하는 스킨스쿠버도 그의 버킷리스트에 올라와 있다. 어쩌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이템으로 창업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앞으로도 그는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