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니 비로소 보이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혜화동> 노랫말 부분) 앞을 보고 걷던 사람들이 문득,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되짚는다. 그 길에 무엇이 아로새겨져 있는지, 어떤 향기가 남아 있는지. 추억이 깃든 1987년의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응답하라 1987

지난 10월 28일, ERICA에서 ‘응답하라 1987, 부활하라 길카페!’라는 슬로건 아래 87학번 홈커밍데이가 열렸다. ‘현재의 삶’을 살던 87학번 동문들은 문득 뒤를 돌아 1987년을 불러냈다. 학교 주변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이야기 나누던 그때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매년 서울캠퍼스와 함께 진행하던 홈커밍데이 행사가 올해부터는 ERICA 단독으로 열렸다. 입학 30주년이 된 87학번의 홈커밍데이는 3년 연속 중앙일보 대학평가 TOP 10을 달성한 학교의 일원으로 자긍심을 느낌은 물론, 동문과 함께 ERICA만의 독자적 문화를 만들기 위해 기획되었다.

87학번 동문 100여 명과 함께 이영무 총장, 김우승 부총장, 양원찬 총동문회장 등도 함께해 자리를 빛낸 이번 행사는 크게 식전행사와 공식행사, 그리고 축하행사 등으로 나뉘어 열렸다.

87학번 동문들은 ‘추억의 통학버스’(사당역, 삼성역 2개 노선)를 통해 ERICA에 도착했다. 오후 3시부터 식전행사(캠퍼스 투어)가 진행되었고, 오후 5시부터는 학생복지관 프라임라운지 교직원식당에서 공식행사(홈커밍파티, 만찬)가 열렸다. 그 이후 축하행사로 추억의 길카페가 열렸다.

우선 행사당일 오후, ERICA 민주광장에 들어서니 1980년대 유행했던 음악이 사람들을 반겼다. 오랜만에 학교를 찾은 동문들은 주최 측이 나눠주는 명찰을 가슴에 달고서 아는 이를 찾아 나섰다. 아는 얼굴이 보이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회포를 푸는 모습도 보였다.

식전행사 프로그램으로는 캠퍼스 투어가 진행되었다. 동문들은 스쿨버스를 타고 재학생 홍보대사인 사랑한대 단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캠퍼스 곳곳을 돌아보았다. 경상관과 기숙사, 학연산클러스터지원센터 등을 두루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동문들은 주변 풍경은 물론, 새롭게 지어진 건물이 많다 보니 새로운 학교의 모습을 낯설어하기도 했다. 일어일문학과 87학번 조기숙 동문과 박순복 동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캠퍼스 투어를 실시하는 동안, 그들은 10개도 채 되지 않던 학교 건물이 이제는 70개가 넘는다며 놀라워했다.

“학교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어서 놀라워요. 본관 건물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이렇게 예쁜 호수공원도 없었어요. 지금 기숙사 너머에는 바다가 보였죠. 당시에는 학교 주변이 다 논밭이었어요. 수업 마치면 학교부터 안산예술인아파트까지 걸어가면서, 중간에 있던 과수원에서 과일도 따 먹고 그랬죠. 예전이 그리워요. 하지만 새롭게 바뀐 학교가 참 예쁘긴 하네요.”(조기숙 동문)

박순복 동문은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분위기를 떠올렸다.

“제가 다닐 때는 학생들이 데모를 많이 했어요. 캠퍼스에 최루탄 냄새가 가득했죠. 학생 보호 차원에서 학교 정문에 헬멧이 비치되어 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캠퍼스 투어 안내를 맡은 사랑한대 12기 강미소 단원(영미언어·문화학과 16)은 처음에는 87학번 선배들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을 캠퍼스를 어떻게 보실까 궁금했다고 한다.

“예전 캠퍼스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워하는 경우도 있으셨죠. 이를테면 새롭게 들어선 행복기숙사를 보며, 지금은 사라진 옛 기숙사 건물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분도 계셨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그런 분들도 다양하고 새롭게 변화하는 캠퍼스를 보며 놀라워하셨어요. 더 크고 깔끔해진 캠퍼스나 교내 들어선 세탁실이나 상가를 신기하게 생각하셨어요.”

강미소 단원 말에 따르면, 특히 꿈틀 체험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한다.

“캠퍼스 투어 도중 있었던 경상관 꿈틀 타기 체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셨는데, 정작 타보시니까 너무 즐거워하셨어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셨고요. 홈커밍데이가 선배님들의 기억 한편에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자리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의 든든한 받침이 되고 싶다

캠퍼스 투어 후에는 학생복지관 프라임라운지에서 공식행사인 홈커밍파티가 진행되었다. 동문이기도 한 백승주 KBS 아나운서(독어독문학과 95)가 진행을 맡은 공식행사에서는 유쾌한 동문들의 모습이 돋보인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마련되었고, 1987년 당시 학생을 가르쳤던 교수님들을 모셔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그 밖에 동문들은 명함을 교환하고, 두런두런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자신의 학과는 물론, 다른 학과 동문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등 87학번 동문 전체가 소통을 만들어가는 모습이었다.

87학번 홈커밍데이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데에는 준비위원장을 맡은 신상수 동문(사회학과 87)의 공도 있다. 현재 웨딩그룹 (주)무궁 스칼라티움 대표이기도 한 그는 이번 행사에서 학교발전기금으로 1억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행사 개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어요. 동문 연락망이나 행사 진행 등에서 부족한 부분도 좀 있었을 거예요. 저도 그렇게 느끼니까요. 하지만 동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신 동문은 환하게 웃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모임을 통해 동기들과 우정을 쌓을 뿐 아니라, 학교에 대해 고민하며 발전적인 의견을 나누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 학교가 국내 정상급 대학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너무 기뻤어요. 우리도 힘을 내서 자주 뭉치고 후배들과 소통하며, 학교의 든든한 받침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이번 홈커밍데이가 그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하라 길카페!

하이라이트는 홈커밍파티와 만찬 이후 열린 ‘추억의 길카페’ 재연 행사였다. 친구와 시간 보낼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당시 동문들은 학교 앞 미개통 인도(현 안단테광장 방면)에서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고는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그걸 이른바 ‘길카페’라 불렀다. 그 길카페를 되살려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에서 동문들은 교내에서 준비된 둥그런 통 안에 불을 지피고 둘러앉았다. 동문 모두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보였다. 밤은 깊어가지만, 행사장의 장작불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동문들은 30년이 지난 2017년에도 여전히 학교를 추억하고 있었다. 물론 이야기는 추억에서 그치지 않았다. 신상수 동문의 말처럼 그들은 성장하는 ERICA의 현재에 기뻐하며, 더욱 성장할 학교의 미래를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든든한 받침이 될 준비도 되어 있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금상첨화 아닐까.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아름다운 법.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사랑할 때, 우리는 좀 더 아름다운 미래와 만나게 되지 않을까. ERICA 87학번 홈커밍데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해 더욱 빛나는 시간이었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