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가 한 팀”

서울시 양평동5가의 한 골목에 들어서면 파란색 페인트로 칠한 1층짜리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철과 알루미늄 같은 금속이 보이고, 온갖 작업공구와 기계들이 보인다. 벽면 곳곳에 걸린 금속공예 작품들은 단번에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을 위한 안전손수레가 탄생했다.

 

서리풀안전손수레의 탄생

도시 곳곳에서 폐지가 산더미처럼 쌓인 수레를 끄는 노인과 마주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가득 담아도 1만 원을 채 벌기 힘들지만, 고단한 삶은 그들을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성식 겸임교수는 그들의 손수레에 주목했다. 오직 ‘그들’만을 위한 손수레를 만들어 선물하고 싶었다. ‘안전하고 실용적인 데다, 깨끗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겸비한다면, 그분들도 자신들의 일에 좀 더 자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서울시 서초구와 서초지역자활센터, 현대자동차 그리고 이성식 겸임교수가 협력해 만든 서리풀안전손수레(‘서리풀’은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마을 이름으로, 서리풀이 무성하다는 데서 유래)의 시작이었다. 손수레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처음에 어떻게 나온 걸까?

“서초지역자활센터에 일하는 지인이 있는데, 올해 4월 즈음 연락이 왔습니다. 현대자동차 후원으로 사회공헌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폐지 줍는 노인 분들을 위한 손수레를 만들고 싶다는 말이었죠. 기존의 손수레는 너무 낡거나 지저분해 보이는 등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어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손수레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수레 하면 몇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조악한 디자인이 떠올랐다. 지저분하다는 시선, 그리고 고개 숙인 노인 분들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더 나은 손수레를 위해 맨 처음 한 일은 관찰이다. 당시 작업실 인근에 있던 고물상을 들락거리는 노인 분들과 손수레를 살폈다. 문제점을 찾고 개선사항을 반영한 디자인 시안을 서초구에 제출한 것이 6월이었다. 나무 합판이 아닌 알루미늄 재질로 만들어 손수레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고, 오른쪽 손잡이를 낮춰 수레 내부 진입이 용이하도록 했다. 수레 끄는 분들의 시선을 가리지 않도록 디자인했음은 물론, 혹시나 수레를 놓쳤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역방향 제어장치를 달았다. 평상시 항상 정지 상태를 유지하는 덕분에 비탈길에서도 한결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야간 반사경 8개를 설치해 야간 이동 시 상대방이 수레를 손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깔끔한 디자인에다 안전성까지 겸비했으니 그야말로 폐지 줍는 분들에게 최적화된, 그들을 위한 손수레였던 셈이다.

이 겸임교수의 디자인에 만족한 서초구는 20대로 예정돼 있던 손수레 제작을 60대로 늘렸다. 8월부터 생산에 들어가 결국 20대가 먼저 세상에 빛을 보았다.

“현대자동차는 후원을 해주었고, 서초구와 서초지역자활센터는 실태 파악과 손수레 테스트, 대상자 선정 및 배달, 관리 등을 맡기로 했어요. 저와 동료들은 새로운 리어카의 디자인과 샘플 제작을 맡았죠. 각자가 맡은 바에 충실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겸임교수의 손수레 작업에는 그가 운영하는 LSSStudio 작가들과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있는 팹브로스의 김용현・정성일 대표도 힘을 보탰다. 이 중에는 디자인, 기계공학을 전공한 ERICA 학생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리풀안전손수레라는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 겸임교수는 나머지 40대의 경우, 노인 분들이 좀 더 편리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손수레의 크기와 디자인 등에서 수정을 거친 다음 11월에 생산했다고 밝혔다.

공유와 협력의 공간에서

양평동5가에 위치한 이 겸임교수의 작업실은 현재 메이커 교육 및 문화기획을 하는 팹브로스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 팹브로스는 ERICA 출신의 김용현(기계공학・디자인공학과 다중전공 08) 씨와 정성일(기계공학과 08) 씨가 공동대표로 있다. 작업실을 사용하는 건 이 겸임교수와 팹브로스뿐만이 아니다. 그 밖에도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찾아와 작업을 한다고 한다.

“작업실 이름이 ‘M!(M Factorial)’입니다. !은 ‘계승’을 뜻합니다. 2!이 1과 2를 곱한 2라면, 3!은 거기에 3을 곱한 6이 되지요. 4!는 거기에 다시 4를 곱한 24가 되고요. 숫자가 늘수록 더해지는 게 아니라 곱해지죠. 작업실에 많은 이가 참여하면 할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이 더해지는 게 아니라 곱해진다는 뜻에서 팹브로스의 김용현 대표가 지은 이름입니다.”

작업실 M!은 공유와 협력의 공간이다. 각종 제품디자이너와 건축가, 금속공예가, 메이커 기획업체, 그리고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작업 공간이 필요한 이들이 모여 각자 작업을 하되, 필요할 때는 기꺼이 서로의 일을 돕는다. 개인의 공간을 존중하되 소통을 아끼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내 것’을 남들과 공유한다. 너와 나의 소통을 통해 ‘우리’가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RICA에서 금속디자인을 전공한 이 겸임교수는 그동안 장신구, 신발과 가방(닥터마틴 매장 전시), 노아의 방주(스타필드 하남에 전시되었던 금속조형물) 등 실제 제품과 전시 작품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현재 그는 금속 공예는 물론, 공간을 구성하는 인테리어 분야까지 관심을 두고 있다. 각기 다른 분야처럼 느껴지지만, 작업들을 수행하는 이 겸임교수의 머릿속에는 ‘실용성’이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실생활에서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다양한 작품과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 대부분의 작품 소재는 버려진 것, 혹은 남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는 것에서 찾는다.

“대학 때부터 저는 버려진 녹슨 못이나 금속 등을 갈아 다시 새로운 물건으로 탄생시키는 것에 매력을 느꼈어요. 헌것을 실용적으로 재활용해 ‘새것’으로 만드는 일들이 절 지금 이곳까지 이끌었죠. 공간을 구성할 때도 ‘데드 스페이스(죽은 공간)’를 그냥 두지 않아요. 그런 공간이 예술적으로는 가치가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 삶의 현장 측면에서 보자면 아니거든요.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죽은 공간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만들어야죠.”

내 것을 남과 공유하며 협력한다는 생각, 소외된 공간과 사람을 살아 숨 쉬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 이 겸임교수의 이런 생각에서 재능을 나누며 세상을 숨 쉬게 하는 ‘프로보노’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 겸임교수는 앞으로도 다양한 생각이 오가는 이 열린 공간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에게 이로운 물건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팹브로스와 ERICA 겸임교수 및 학생들만이 한 팀은 아니다. M!과 그곳의 협력 작업에 흥미를 느끼는 모두가 한 팀이다. 여태껏 그래왔듯 말이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