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전성기를 주도한 메디치 가문은 당대의 예술·과학·상업·철학이 함께 협업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르네상스를 열었다.
이를 ‘메디치 효과’라고 한다.
공학도 출신의 정보사회학과 백현미 교수는 융합과 협업을 통해 메디치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공학과 경영정보학의 접목

손 안의 모바일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사회, 4차 산업혁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를 예고하고 있다. 미국의 한 IT 업체는 직원들의 몸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해 사무실 출입 및 컴퓨터 사용 기록을 관리하기로 했다. 인간도 늘 비트의 체계에 접속돼 있는 것이다. SF영화 <공각기동대>처럼 머지않아 네트워크에 장악된 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사회는 ICT(정보통신기술)에 의해 급변하고 있다.

“정보사회학은 ICT가 변화시키는 사회를 연구하는 한편, ICT를 활용해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사회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ICT를 기획하는 분야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학문이지요.”

소셜미디어, 개방형 협업, 인공지능 등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이 정보사회학의 주요 연구분야라고 소개하는 백현미 교수. ICT 발전으로 달라진 사회를 연구할 뿐 아니라, ICT 중 하나인 빅데이터 분석방법을 적극 도입해 이전에는 미처 밝히지 못했던 인간 행위를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문사회학적 기반뿐 아니라, 공학에 대한 탄탄한 이해를 갖춰야 한다. 블로그나 SNS 등 소셜미디어상에서 오가는 버즈(Buzz)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수천만 개가 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빅데이터 마이닝 및 웹크롤링’을 이용한 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공대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백현미 교수는 그야말로 정보사회학에 최적화된 연구자라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완벽한 이과형 학생이었다는 백현미 교수.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아 포항공대 화학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전공에 흥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고, 보다 인문사회학적 사고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석·박사 과정에서 ICT 경영학과 경영정보학을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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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회현상 개방형 협업에 주목

최근 백현미 교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개방형 협업이다. 협업이 보다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에 공유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는 점은 ICT 발전이 야기한 새로운 사회현상 중 하나다. “위키피디아, 퀵스타트닷컴, 오픈소스 프로젝트 등 과거에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개방형 협업이 최근 온라인상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중 백현미 교수는 대표적인 개방형 오픈소스 프로젝트 플랫폼 ‘깃허브(GitHub)’를 통해 가상 조직에서 인력이 어떻게 배분될 때 효율적 협업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온라인상에서의 개방형 협업 또한 오프라인 조직과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수의 특정 개발자가 조직 프로젝트 대부분을 관리하고, 나머지 대다수 개발자들은 소수의 프로젝트에 기여할수록 더 높은 조직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평등한 구조의 온라인 조직에서도 리더나 키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연구 결과는 지난 5월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급 국제학술지인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인포메이션 매니지먼트(International Journal of Information Management)’에 소개됐다. 현재 백현미 교수는 개방형 협업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내부 및 외부 개발자 비율을 어떻게 조합해야 하며, 프로젝트 운영자가 어떤 식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이 좋은지 연구하고 있다.

 

sp_inter_02사고의 확장은 열린 마음에서 비롯

정보사회학은 다학제적 역량을 필요로 하는 학문이다. 공학적 지식과 경영학적 지식을 두루 갖춘 백현미 교수의 이력은 실제 연구에서 어떻게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을까. “DIKW 피라미드(Data, Information, Knowledge, Wisdom Hierarchy)에 의해 데이터가 정보가 되고, 정보가 지식이 되며, 최종적으로 지식이 지혜가 되는 프로세스 전반을 다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컴퓨터 사이언스 역량, 데이터를 분석하는 통계학적 역량과 사회과학적 역량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또한 연구에는 기획력과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경영학을 통해 얻은 사회과학 분야의 기획력에, 공학을 통해 얻은 실행력을 더해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 공학적 기반이 부족한 사회과학도들에게는 정보사회학이 다소 어려운 학문이 아닐지 우려된다. 하지만 백현미 교수는 ICT 발전으로 실행력의 벽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긴 셈입니다. 학생들 또한 이런 시너지를 잘 활용하길 바랍니다.”

 

 

실제 백현미 교수는 학생들에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인문사회 전공자들에게는 쉬운 과목이 아니다. 그럼에도 열린 마음만 갖고 있다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수업이다. “새로운 분야를 받아들이려는 동기가 강한 학생들은 열심히 수업에 임하는 반면, 왜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융합적 역량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학문이라는 분야는 칼로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이는 백현미 교수. “예전 학자들은 철학자이면서 수학자, 과학자, 예술가였습니다. 모든 학문은 어느 정점에 이르면 접점에서 만나게 됩니다. 생각을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가는 습관을 기른다면 저절로 다른 학문과의 접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융합은 각 요소들의 합보다 더 큰 에너지 분출

백현미 교수는 지난 여름방학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어볼 것을 권했다. 역사학자이지만 과학적 시각을 갖춘 저자의 책을 읽다 보면 사고의 빅뱅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학문에 대한 열린 마음과 지속적으로 배움을 즐길 줄 아는 자세, 생각의 끝까지 가보는 습관은 앞으로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대한 적응력을 길러줄 것입니다. 또한 삶을 더욱 가치 있게 즐길 수 있는 자세이기도 하고요.”

백현미 교수 또한 다양한 영역의 연구자들과 빅데이터 분석방법을 활용한 공동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학제 간 공동연구는 기존에 이루어지던 결과와 다른 뭔가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요소들이 결합하면 각 요소들의 합보다 더 큰 에너지를 분출하게 된다는 메디치 효과. 백현미 교수는 연구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메디치 효과를 경험해보기를 제안했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