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질환, 뇌질환 등 신약을 개발하려면 신약이 결합해야 하는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규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백질의 구조를 유지해주는 양친매성 물질이 필요하다. 한양대학교 생명나노공학과 채필석 교수는 지난 10여 년간 양친매성 물질 개발에 매진해왔다. 지난해 10월과 올 3월 연이어 양친매성 물질을 개발해 발표한 채필석 교수를 만나보았다.

 

현재 채 교수는 세포막 단백질의 안정성을 높이는 화합물 개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연구자라 해도 무방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이 분야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드물다.

2017erica_res_hoti_01

노벨화학상 연구에 공헌한 ‘MNG’

2012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브라이언 코빌카 교수는 수상 소감을 밝힌 한 인터뷰에서 채필석 교수에게 고마움을 표한 바 있다. 코빌카 교수는 신약 개발 연구자들의 주요 연구대상인 G단백질 연결 수용체(GPCR)의 기능과 구조를 밝혀 노벨화학상의 영광을 안았는데, 채필석 교수가 개발한 MNG라는 물질이 GPCR 을 세포막에서 빼내 결정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를 통해 채필석 교수는 노벨상 수상을 도운 한국 학자로 알려지게 됐다. “코빌카 교수와는 2008년 미국에서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5개 논문을 공동 발표한 바 있습니다. 제가 개발한 MNG가 노벨화학상을 받는 데 기여해 저에게도 영광일 따름입니다.”

채필석 교수는 이렇게 자신의 연구는 세포막 단백질 구조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화학적 툴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동차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좋은 연장이 필요한데, 채 교수의 연구가 그러한 연장에 해당한다고 비유했다. 간혹 남 좋은 일만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채필석 교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지난해 10월 세계적인 학술지인 케미컬 사이언스(Chemical Science)에 세포막 단백질 구조 분석을 도와주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해 발표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3 월에는 더욱 기능이 강화된 물질을 개발해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3월호에 게재했다.

2017erica_res_hoti_02

채필석 교수는 세포막 단백질 구조 연구의 화학적 툴을 밝힌 MNG를 개발해, 세포막 단백질 구조를 밝혀내는 데 독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데 일조

세포의 막을 구성하는 단백질은 외부에서 오는 신호나 각종 물질을 세포 내로 전달하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신약은 세포막 단백질에 결합해 약효를 발휘하기 때문에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면 이에 결합할 수 있는 신약을 보다 쉽게 설계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신약 개발 연구들의 40% 이상이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세포막 단백질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문제를 안고 있다. 세포막 단백질을 연구하려면 세포막에서 단백질을 추출해야 하는데, 추출 후 변성되거나 응집으로 침전돼 본래의 구조를 잃어버리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세포 안팎의 용해성 단백질(마이 오글로빈)의 구조는 1958년에 처음 밝혀졌지만, 가장 먼저 규명된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는 그로부터 약 30년 뒤인 1985년에 이르러서야 밝혀졌다. 현재도 구조가 알려진 단백질 12만 개 중 세포막 단백질은 6백 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규명하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과학계에선 물에 녹는 성질과 녹지 않는 성질을 모두 지닌 양친매성 물질을 이용해 세포막 단백질의 성질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물질을 이용하면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 보다 쉽게 구조를 밝힐 수 있다. 채 교수는 지난 여 년간 세포막 단백질의 변성이나 응집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데 사력을 다했다. 지난해 10월에 개발한 M-BTM과 올해 3월에 개발한 NBM이 연구의 결과물들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양친매성 물질을 개발하는 이유는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적 안정성을 보다 향상시킬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한 가지 물질이 모든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데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위상

그동안 채필석 교수가 개발한 여러 양친매성 물질 중 세포막 단백질 구조 분석에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앞서 코빌카 교수가 덕을 보았다고 밝힌 MNG이다. 코빌카 교수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2010년에 개발된 MNG 는 과거 30년 동안 사용돼 왔던 도데실마토사이드(DDM)보다 효과가 뛰어난 물질이 다. MNG는 2011년 미국의 유명 바이오업체에 기술이전돼 시판되고 있다. “MNG는 30개 이상의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데 사용됐을 정도로 기존 물질보다 월등히 우수한 물질입니다.”

2017erica_res_hoti_03채 교수가 이렇게 세포막 단백질의 안정성을 돕는 양친매성 물질 개발에 주력하게 된 계기는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메디슨 캠퍼스에서의 박사 후 연구과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지도교수의 제안으로 개발을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관련 연구가 전무해 모든 기초를 손수 일궈야 했다. 그렇게 2년 동안 100여 개에 이르는 물질을 개발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무엇이 문제인지 밝혔다. 그리고 설계원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설계원리를 알아야 물질들의 구조와 특성의 상관관계를 밝혀 보다 우수한 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데, 100여 개의 물질을 개발하며 설계 원리의 기초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계원리를 바탕으로 지도교수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 MNG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설계원리에 대한 노하우를 차곡차곡 쌓아 채 교수만의 독자적인 무기로 만들었다.

현재 채 교수는 세포막 단백질의 안정성을 높이는 화합물 개발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연구자라 해도 무방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이 분야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드물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며 화학과 생물학이라는 양 분야를 섭렵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집념이나 노력으로는 어려운 분야입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일회성 연구에 그쳐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야 빛을 발하는 10여 년의 노력

대게 상응하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성급히 결과만 바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과는 열정과 인내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채필석 교수도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10여 년간 한 우물을 팠기 때문에 유의미한 연구 성과를 축적 하게 된 것이다. “2015년부터 괄목할 만한 성과가 도출되고 있습니다. 개발한 물질 중 5개 화합물이 상용화됐고, 현재 3개 물질이 기술이전 계약을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양친매성 물질을 개발해도 사용 해주는 연구자를 만나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개발하는 즉시 각국의 연구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제가 개발한 양친매성 물질들이 세포막 단백질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많이 사용될수록 보람을 느낍니다. 기존 물질을 대체할 수 있는 보다 우수한 물질을 개발해야죠.” 언젠가는 본인이 개발한 물질로 직접 세포막 단백질의 구조를 밝혀 신약 개발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채필석 교수. 앞으로도 그의 연구는 신약 개발 연구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Posted by hyu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