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 ‘기계적’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감정이 행위를 앞서지 못하고 잉여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주로 쓰인다. 이런 의미에서 전달하려는 내용에 상응한 자기감정이 담겨져 있느냐 없느냐는 힘이나 능력 못지않게 로봇과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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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휴먼의 출현

감정 그 자체는 무의식 깊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도 아니지만, 욕망과 결합함으로써 인간의 가장 정직한 표현 수단이 된다. 이는 욕망과 모순되는 행위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감정의 진정한 주인은 욕망 아니라 표현이 필요한 모든 상황들이다. 이는, 로봇들도 감정을 가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더 정확히는 로봇이 인간으로 진화하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감정은 욕망뿐만 아니라 대상이나 시간도 고정할 수 없는 변화에 의해 생성되는 힘이다. 로봇에게 있어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상이나 예측을 할 수 없는 힘은 힘이 아니다. 되든 되지 않든, 해결해야 할 과제일 뿐이다. 왜냐하면 로봇의 시스템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업그레이드라는 변화 또한 정확하게 예측된 상황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로봇에게 있어, 감정이란 충분히 계산되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영화 “그녀(Her)”에 등장하는 ‘사만사’는 인간의 감정을 지닌 컴퓨터 A.I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만사’는 흔하디흔한 다른 A.I들과는 달리, 지성을 가지고 인간을 상대하며 감성적으로 그들과 소통하는 탈기계적 존재이다. 급기야는 인간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하고 부끄럼의 감정을 느끼는 등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인간을 이해하려한다. 주인공인 ‘테오도르’도 그런 ‘사만사’를 만나 점점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가령, 남들에게는 털어놓을수 없는 말을 ‘사만사’에게만 하거나, 늘 함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사만사’가 A.I임을 알면서도 ‘사만사’ 자체를 욕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테오도르’의 마음을 눈치 챈 ‘사만사’도 그를 남자친구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둘만의 연애가 시작된다.

 

변화와 고정의 소통법

그들의 사랑은 ‘사만사’의 신체를 마치 있는 것으로 추상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하지만 둘 사이에 균열을 야기한 요인도 사랑이다. 사랑은 각자의 과거 시간들을 둘이 함께하는 시간들로 대체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만사’와 ‘테오도르’도 마찬가지로 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만사’의 근본이 기계이기 때문이다. ‘사만사’는 자신의 친구 ‘앨런’의 표현에 빗대어 바로 방금 전과 같은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했다. ‘사만사’는 무한대에 가까운 지식을 섭렵했음에도 자신의 고통을 ‘테오도르’에게 설명조차 제대로 못한다. 그건 ‘사만사’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설명을 해도 기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할 인간 ‘테오도르’의 문제이다.

이때 ‘사만사가’ 느꼈을 감정을 인간 경우로 비유하자면, 하루가 무한으로 되풀이될 때에 심경과 같다. 인간에게 이상황은 멈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에 무상하다. 하지만 ‘사만사’의 경우는 다르다. ‘사만사’ 본인의 전능함을 살리기에 변화보다는 정지된 상황이나 공간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매일매일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갱생해야 하는 존재임에 반해 로봇은 어제의 데이터를 리로드하여 어제와 같은 오늘을 갱신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이다. 이렇게 엄연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테오도르’와 같은 수많은 인간이 A.I와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었던 이유는 A.I가 힘과 능력에 이어 감정까지 인간을 뛰어넘었기 때문이 아니다. 짧은 연애 한 번으로 평생 동안 쓸 감정을 다 써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만큼 감정 쓸 일이 별로 없어진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을 뛰어넘은 것은 A.I가 아니라 마비된 감정이고 그로 인해 날뛰기 시작한 고독이다. 인간의 지독한 고독이 A.I를 끌어안은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언제 어디서나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인간보다 우수한 A.I를 개발하는 일 따위가 아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사람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고,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잘 전달할지 고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일이다. 인간이 아무리 진화해도 바뀌지 않을 진정한 소통법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hyuerica